[10대에게 경제교육을] 제4부 : (2) '소비자 심리와 시장'

미국 조지아주 던우디시에 있는 던우디 하이스쿨의 12학년(고등학교 3학년) 마케팅 수업시간. 시작종이 울리자 경제담당 울리자 스티브 포텐베리 선생님은 두 팔에 커다란 봉투를 한아름 안고 교실문을 연다. "얘들아, 배 많이 고프지 않니?" 수업을 시작하는 포텐베리 선생님의 첫 마디는 약간 엉뚱하다. "네, 선생님 목말라요." "햄버거 먹고 싶어요." 일순간 교실이 떠들썩해진다. 선생님의 봉투에서 무언가 나올 것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아는 눈치다. "자, 그럼 우리 오늘 먹을 '양식'이 뭔지 한 번 볼까?" 드디어 포텐베리 선생님의 누런 봉투가 열렸다. 카프리선, 슬라이스 치즈, 스낵 시리얼…. 방금 전 슈퍼마켓에 들른 듯 봉투 안에는 과자들이 수북이 담겨 있다. 순간 아이들의 눈이 반짝거린다. "우선 우리 시리얼을 한 번 먹어볼까?" 포텐베리 선생님은 빨간 상자의 '캡엔 크런치(Cap'n cruch)'와 파란 포장의 '크리스프 크런치(Crisp crunch)' 두 가지 시리얼을 탁자 위에 올려 놓았다. "캡! 캡! 캡주세요(Give me cap!)"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캡엔 크런치를 외쳐댔다. '캡엔 크런치'는 아이들에게 인기 절정인 시리얼 제품. 가격은 3달러79센트로 좀 비싼 편이다. '크리스프 크런치'는 할인점 크로거(Kroger)에서 '캡엔 크런치'를 흉내내 만든 '아류작'으로 값은 절반 수준인 1달러99센트. 둘 중 어느 것을 살 것이냐고 물었더니 반 아이 21명 중 한 명만 빼고 모두 '캡엔 크런치'를 골랐다. "정말 '캡엔 크런치'가 더 맛있을까?" 포텐베리 선생님은 학생들의 책상 위에 키친 타월을 한 장씩 돌린 뒤 타월 위에 A,B를 크게 써보라고 말했다. "지금부터 선생님이 두 시리얼을 키친 타월 위에 부을거야. 자, 이제 눈을 한 번 감아볼까?"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반 아이들은 모두 눈을 감고 책상에 엎드렸다. 포텐베리 선생님은 조심조심 책상 사이를 오가며 시리얼을 부었다. "이제 눈을 떠봐. 너희들 앞에 맛있는 시리얼 두 개가 있지? 아마 너희 머리 속에는 '어느게 캡엔 크런치일까'라는 생각밖에 없을 거야. 선입견을 버리고 맛 자체를 생각해보렴. 어느 것이 더 맛있니?" 이른바 '블라인드 테스트'(눈을 감은 채 상표 분간하기)다. 'A가 더 맛있는 사람?' 하고 물으니 14명이 손을 들었다. 'B'를 선택한 학생은 6명. 여학생 지니는 한참 머뭇거리더니 손을 들지 않았다. "B가 더 달콤해요. 더 바삭바삭하고요." 교실 구석에서 친구인 에이미가 말했다. 이번엔 맨 앞줄에 앉은 브라이언이 말한다. "별 차이가 없는데요. A가 좀 짭짤한 것 같아 먹기에 좋아요." 의견이 조금씩 엇갈리기 시작했다. "짜자잔∼. 어디 한 번 볼까." 아이들이 외쳐대던 '캡엔 크런치'는 A였다. "어때? 생각했던 것보다 맛 차이가 별로 안 나지? 브랜드만 봤을 때 거의 모두 '캡엔 크런치'를 택했지만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니 의견이 분산됐지? 이게 바로 상표 충성도(Brand loyalty)를 보여주는 거야." 포텐베리 선생님은 "뚜렷한 품질 차이는 없지만 브랜드가 더 알려져 있는 것을 사는게 소비자 심리"라며 "이 때문에 독특한 마케팅 방법으로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알려 나가는게 점점 중요한 마케팅 전략으로 굳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블라인드 테스트'가 중요한 시장조사 방법으로 쓰인다는 것도 곁들여 말했다. 포텐베리 선생님은 갑자기 "외국에서 태어난 사람 손 한 번 들어봐"라고 말했다. 그러자 한국에서 온 아빈, 멕시코에서 온 곤살레스, 독일에서 온 베르너, 베네수엘라에서 온 제인, 베트남에서 온 세라가 손을 들었다. "우리 교실에서만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학생이 다섯 명이나 되지? 애틀랜타는 전통적으로 여러 나라에서 이민온 사람들이 많아. 인종도 다양하고. 그 때문에 예전부터 표본조사를 하기에 좋은 지역으로 꼽힌단다. 이 지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코카콜라가 전세계를 상대로 마케팅을 성공적으로 펼칠 수 있었던 것도 이런게 중요한 요인이 됐단다." 포텐베리 선생님의 설명에 학생들은 머리를 끄덕였다. 소비자 심리, 브랜드 로열티, 블라인드 테스트, 표본조사 등 수업시간에 배운 개념들이 학생들의 머리 속에 쏙쏙 박힐 무렵 종이 울렸다. "오늘 수업은 여기서 끝. 티슈에 담긴 시리얼은 오늘 열심히 공부해서 주는 상이야.맛있게 먹고 다음 시간에 보자." 던우디(미 조지아주)=김미리 기자 mi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