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묵은 문제의 새로운 조명..李龍兌 <TG삼보컴퓨터 회장>

요새는 세상이 하도 빨리 변해 당연시하던 일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산아제한이 그런 사례다. 60년대 우리나라에서는 '아이 하나 낳기 운동'을 정부가 추진한 일이 있다. 그 때 구호가 '아들 딸 구별말고 하나 낳아 잘 기르자'였다. 그런데 지금은 출산율이 1.17명으로 세계 최저가 되며 인구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이 바람에 적은 노동인력이 많은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시대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이제는 거꾸로 '아이를 많이 낳자'는 운동을 벌여야 할 상황이다. 또 한가지 사례는 60년대의 '쌀밥 적게 먹기 운동'이다. 초·중·고 학생들의 도시락에 잡곡이 섞여 있지 않으면 처벌하는 제도까지 도입됐었다. 그런데 지금은 쌀이 너무 많이 남아 돌아 재고 처리에 골치를 앓고 있다. '쌀밥 많이 먹기 운동'을 벌여야 할 판이다. 이와 비슷한 일의 하나가 해방 후에 일어난 '한글 전용화 운동'이다. 그 때는 인구의 절반 이상이 글을 읽지 못했기 때문에 당시의 어문정책은 우선 글 읽을 줄 아는 국민을 늘리는 게 급선무였다. 어문정책이 이렇듯 글 읽게 하는데 목적을 뒀다면,한글 전용은 그 목적에 맞는 타당한 해법이다. 그런데 여건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이제 국민 대부분이 고등학교를 나오고,고교 졸업생의 70%가 대학에 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 하의 국어교육 목적은 글 읽게 하는 것이 아니라,풍부한 어휘를 구사해 세련된 문장,함축성 있는 표현을 할 수 있게 하고,나아가 고귀한 문화유산을 이해하고 감상하여 우리의 정신생활을 풍부하게 하는데 두어야 한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많은 어휘를 구사할 수 있게'하는데 목표를 둬야 마땅하다. 많은 어휘를 가장 쉽게,적은 시간으로,적은 노력으로 이해하게 하는데는 한자를 가르치는 것이 가장 유용하다. 이종훈(李宗勳) 전 한국전력 사장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가 영어단어를 외울 때는 덮어 놓고 반복해서 외울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무척 힘이 들었다. 그런데 만일 한자를 모르고 한글단어를 외운다면,영어단어 외우듯 강짜로 외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자를 천자만 알고 있어도 이 글자들의 결합으로 된 수만의 단어를 한자 뜻을 통해서 쉽게 외울 수 있다고 했다. 만일 한자를 모르고 수만개의 단어를 외우려 하면 영어단어 외우듯 해야 하니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인가? 간판이나 읽고,이름이나 쓸 줄 아는 초보적인 국어생활을 하는 게 아니라,신문 사설 정도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을 기르려면 한자를 가르치는 것이 오히려 시간이 훨씬 적게 걸린다. 가령 국어사전의 모든 단어 뜻을 외운다고 했을 때,한자를 먼저 배우고 외우는 것과 한자를 전혀 안 배우고 외우는 것과 비교하면,한자 배운 사람 쪽이 한자를 배우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수백배나 더 빨리 외울 수 있다. 이러한 이유 하나만으로도 한자교육은 부활돼야 한다. 뿐만 아니라 유럽의 큰 나라들,예컨대 독일 프랑스 영국 사람들은 외국어를 잘 못하는 반면에,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 덴마크 등 작은 나라 사람들은 외국어 두서너개는 한다. 그런데 이들 유럽의 작은 나라들은 모두가 다 잘 사는 나라들이다. 우리나라도 동북아시아에 있어서는 작은 나라다. 우리도 유럽의 작은 나라 사람들처럼 영어 외에 중국어와 일본어를 할 줄 알아야만 하는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중국어와 일본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한자를 배우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런 의미에서도 한자 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한자를 외국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우리는 수천년간 이 글자를 써왔다. 우리 이름도 한자로 쓰고,우리의 주소도 한자로 쓰는데 어떻게 해서 외국어란 말인가? 쌀의 종자도 외국에서 왔고,무명의 종자도 외국에서 왔고,고추의 종자도 외국에서 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농사지어 먹어 왔기 때문에 우리 것이라고 생각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건설은 참여정부의 주요 국정과제다. 우리 국민들이 한자를 많이 알면 알수록 일본은 물론 중화권에 대한 접근성이 그만큼 높아진다. 법을 만드는 사람,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에게 한자교육을 부활할 것을 간곡히 당부한다. ytlee@trige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