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손가락으로 막았을 것을..鄭珠衍 <고려대 교수.노동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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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 파업으로 컨테이너화물의 90%를 처리하는 부산·광양항 컨테이너 반출입 마비사태가 지속,수출화물이 선적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등 '수출대란'이 현실화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항만·물류 및 수출업계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부산항 컨테이너 부두들은 하루 50억∼80억원씩,선사들도 수출화물 선적 차질로 막대한 운임손실을 보기 시작했다.
수출을 제때 할 수 없게 된 기업체들은 대외신용도 추락 등 금전적으로 환산할 수 없는 피해를 당하고 있다.
이와 함께 부산항의 안전성과 신뢰도 하락으로 외국선사들의 기항기피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국가적으로 수조원에 이르는 피해가 예상되고 있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예방할 수 있었다.
불합리한 다단계 알선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전국화물연대가 작년 10월 출범했고,조합원이 불어나는 빚 때문에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화물연대는 지부 혹은 사업장별로 화주와 운송업체들을 대상으로 운임료율 인상,지입제 개선,화주와의 직접계약 등을 요구했으나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그러자 지난 달부터 건설교통부와 교섭을 갖고 경유값 인하,도로통행료 인하와 요금체계 개선,지입제 폐지,제도개선을 위한 노정협의기구 구성 등을 요구했으나 정부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건설교통부나 노동부 등이 이 문제를 좀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 대책을 고민했다면,즉 손가락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을 불도저로도 막기 어려운 상황은 없었을 것이다.
또 대형운송사나 화주회사들도 화물연대가 노동세력으로 등장했는데도 그 실체를 외면하다 이같은 사태를 맞았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화물운송업에서 사용자와 노동자는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구축하는 것을 고민해 보아야 한다.
이 사태의 주요 원인은 다단계운송 영업의 불합리한 관행 때문에 화물차주들이 낮은 요금을 받는 상황에 기인했다.
특히 화주의 주문을 받는 운수회사가 지입차를 선호하는 이유는,물량이 없을 때 고정월급을 줄 필요가 없고,사고보상금·교통위반범칙금 부담 염려도 없으며,노조를 결성할 수 없는 등의 이득이 있기 때문이었다.
또 영세한 규모의 화물차주는 과적(過積)의 요구나,장시간 근로도 감수해야 했다.
이처럼 생존권을 위협받는 자영업 화물차주들의 근로조건을 감안하면 화물차주를 노동자로 볼 수 없다고 하여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는 경직적인 법리 해석은 재고돼야 한다.
물론 화물차주들의 노동권을 인정했을 때 레미콘차량 운전사들이나 보험설계사와 같은 업종에서도 노동조합의 인정이 논란이 될 것이다.
얼핏 보면 이들의 대표권을 제한하는 것이 사용자 입장에서 저임금이나 편리한 고용계약을 가능하게 하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이들의 조직이나 교섭권을 인정할 때 좀 더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고용관계가 형성되고,이 근로자들의 직장에 대한 귀속감이나 노동생산성도 높아질 수 있다.
또 저임이나 불안정한 비정규직 등의 사회불안적인 요소도 개선될 수 있고,이들의 폭발적이고 집단적인 불만표시 등도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화물차주들이 집단농성으로 국가 기간산업의 작동을 멈춘 상황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에서는 사회·경제적 약자가 자기 권익을 요구하려면 정부나 언론으로부터 주목받을 수 있는 과격한 행동을 해야 한다는 암묵적 룰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상황은 지속적인 성장을 고민하는 사용자나,안정적인 산업질서를 바라는 정부는 물론 스스로의 임금이나 근로조건의 지속적인 개선을 바라는 노동자 입장에서도 바람직한 해결책이 아니다.
정부는 가까운 장래에 우리나라를 동북아시아 물류중심국으로 키우겠다는 야심찬 비전을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 나타난 것처럼,물류산업을 운영하는 화물차주들의 불만이 높고,정부 정책이 전략적인 마인드나 적극적인 책임감이 없고,사용자들도 장기적인 대책이 없다면 동북아 물류중심국 비전의 실현은 요원해질 것이다.
jjooyeon@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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