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해냈다] 이랜드 박성수 회장 (5) 뜨거워진 참여 열기

로엠사업부의 성공사례는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무엇보다 직원들이 '지식의 힘'을 깨닫기 시작했다. 돌이켜 보면 이랜드는 2000년까지 지식경영을 위한 시스템 정착과 직원들의 관심 끌어내기에 매달렸다. 박 회장도 지식경영의 핵심에 대해 경영진에게 지속적으로 질문하고 대책을 요구했다. 그러나 로엠이 1억매장 만들기에 성공한 후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직원들은 얼굴에 생기가 돌고 적극적인 자세로 변했다. 학력 직종,직급에 관계 없이 이부서 저부서에서 팝콘 튀듯 '지식'이 쏟아져 나왔다. 지식은 영업부서에서 많이 제출됐다. '2001아울렛'서울 중계점 정육매장의 김성호 주임은 가장 좋은 맛을 내는 삼겹살 두께를 연구해 공개했다. 삼겹살은 6mm 두께로 썰어 내놓을 때 육즙과 향,부드러움이 가장 좋다는 노하우다. 같은 2001아울렛의 천호점매장 윤종삼 주임은 고기 색깔로 매출을 몇배 높였다. 고객들이 고기를 살 때 색깔을 중시한다는 사실을 안 그는 냉장·냉동육이 가장 신선한 선홍색을 낼 수 있도록 시간과 온도를 조절하는 방안을 공개했다. 영업부서 지식이 매출증대에 기여했다면 기술개발 관리부서 지식은 원가절감과 납기단축 등에 효과가 있었다. 오랫동안 현장에서 몸으로 터득해 낸 기술지식은 파급영향이 컸다. 이랜드 기술개발실 김영태 과장은 옷감 소요량을 측정하는 '요척'에 모듈화 계산 개념을 도입,납품기간을 2주이상 단축시켰다. '요척'은 근무기간에 비례할 만큼 개인의 경험과 노하우가 핵심. 그는 업무혁신에 크게 기여한 공로로 '지식성과상'까지 받았다. 설악산 캔싱턴호텔 보일러실의 이명환 관리실장도 비슷하다. 그는 호텔 보일러실 운영비 절감 지식을 내 놔 호텔본부장을 놀라게 했다. 컴퓨터도 모르고 고등교육도 받지 못한 50대 기술 직원이 내놓은 지식을 보고 박 회장은 "지식의 천국이 가까이 온 것 같다"며 흡족해 했다. 이공계 분야의 지식은 이처럼 업무 혁신을 불러왔다. 물론 공개하기를 꺼리는 어려움도 있었다. 기술개발실 김 과장의 경우 지식을 공개하지 않아 승진에서 제외돼 담당부장이 지식경영실 실무자들과 6개월간 불편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이들의 참여도 높아졌다. 평가제도를 바탕으로 2000년 말 만든 '지식페스티벌'과 '이랜드 지식왕'은 참여도를 확산시키는 촉매 역할을 했다. 분기마다 열리는 지식페스티벌에서는 많은 지식이 쏟아져 나와 회사 인재 발굴 무대로 자리잡았다. '이랜드지식왕'은 그룹차원에서 생산성을 가장 높인 팀과 개인을 포상하는 제도로 선발자는 지식영웅이라는 자긍심을 갖는다. 지식몰에 올라오는 건수는 2002년 5월부터는 급격히 늘어 공유지식이 1만건을 넘었다. 심사를 담당하는 장광규 전무는 눈에서 실핏줄이 터지기도 했다. 박 회장은 그 즈음 직원들이 변화하기 시작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피터 드러커'의 조언을 떠올리며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문화가 서서히 회사에 조성되고 있음을 그는 감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규술 기자 kyus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