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글로벌스탠더드로 가자] (5) '일본의 임금교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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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 자동차 노조집행부는 지난해 12월 열린 사업장별 노조간부 연수기간중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일부 간부들이 임금을 대폭 인상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기 때문이다.
사상 최대의 실적을 냈는데 당연히 임금을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5천여명의 사업장별 노조간부들이 참가한 토론회에서 기본급 인상을 요구하지 않기로 합의가 이뤄진 것.
신야 고노 도요타 자동차 노조기획홍보국장은 "최대 실적은 냈지만 도요타의 임금인상은 단일사업장의 사안이 아니다. 일본의 국내외 경제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는게 노조원들의 지배적인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도요타 노사는 기본급을 동결하고 대신 보너스만 6천5백엔씩 인상하는 수준에서 임금협상을 타결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다른 사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미쓰비시 중공업은 협상과정에서 다소 갈등이 있었으나 임금인상은 동결로 끝났다.
이 회사의 야마나카 미치히로 서기장은 "올해 임금협상은 노조와 회사측이 서로 인상요인을 다르게 보는 바람에 유난히 힘들었다"며 "그러나 결국 기본급은 동결하고 보너스만 1개월치 늘리는 내용으로 타결했다"고 말했다.
일본의 노사 관계자들은 올해 임금협상이 예년과 달리 험난한 과정을 거쳐 타결됐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노사 양측이 타결에 이른 과정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엄살처럼 들릴 정도다.
매년 임금철만 되면 파업과 과격시위 등으로 몸살을 앓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의 임금협상은 철저하게 대화와 시스템속에서 이뤄진다.
그래서 임금협상도 불과 1개월만에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타결된다.
일본 기업들은 2월 중순께 노조가 임금안을 제시하면 3월중순까지 임금협상이 끝난다.
한달내에 마무리짓는 셈이다.
협상과정에서 노사가 마찰을 가끔 빚지만 대부분 실랑이 수준이다.
임금협상에 앞서 노사 양측이 수시로 대화채널을 가동, 의견 조율을 하기때문이다.
일본 주요 대기업의 노조들은 임금문제를 단순히 사업장 차원에서 생각하지 않는다.
임금을 인상했을때 미치는 사회 경제적 파급효과 등을 모두 감안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상상할수 없는 '남의 나라' 얘기다.
일본 노동조합총연합회(렌고)의 요지 다쓰이 국장은 "지난 59년에는 철강노조가 무려 49일간 파업을 할 정도로 경영자측과 치열하게 대립했다"며 "그후 경영자측은 근로자가 중요하다는 인식아래 노조와의 대화를 중요시하게 됐고 노조 역시 과격투쟁은 노동자 스스로의 목줄을 죄는 행위라는 걸 깨닫게 돼 일본의 노사문화가 크게 바뀌었다"고 말했다.
일본의 노사는 철저하게 대화와 타협을 통한 임금협상을 고수하고 있다.
임금협상에 앞서 회사측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경영실적을 노조측에 성심껏 설명하고 노조 역시 조직원들 사이의 상향식 의사결정을 통해 합리적인 임금수준을 요구한다.
도요타는 매년 본사 3층 대회의실에서 경영진과 노조집행부가 참여하는 노사협의회를 임금협상에 앞서 네차례나 개최한다.
협상장에서 만나 설득하기에 앞서 미리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전달하는 것이다.
여기에 회사측과 노조가 만나는 노사간담회와 지부간담회만도 연 7회에 달한다.
일본의 임금체계는 최상급노조인 렌고와 산별노조, 개별기업으로 이어지는 3단계 시스템으로 이뤄졌다.
일본내 기업 노조의 65% 가량이 가입해 있는 렌고가 전체 임금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 각 산별노조가 이를 기준으로 삼아 산업별 임금수준을 결정한다.
개별기업들은 이를 바탕으로 회사의 실적을 임금에 반영한다.
이과정에서 철강 조선 중기 등 국가기간산업의 임금인상률은 다른 기업들의 모델이 되는 시세결정산업(Pattern-setter) 역할을 해왔다.
80년대 이후에는 자동차 철강 조선 중기 등 유력민간 4개 산별노조가 모인 IMF-JC(국제금속노련 일본협의회)가 시세결정산업 역할을 해왔으며 90년대이후에는 NTT도코모 등 통신산업이 이에 가세했다.
도쿄=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