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新성장' 담당이 어디요?

서울 신당동의 떡볶이집,경기도 포천의 이동 갈비집을 찾아가 본 사람들이면 '원조'라는 간판 때문에 헷갈렸던 적이 있을 것이다. 5∼10년 후 한국경제의 '먹거리'를 발굴하겠다며 정부 부처들이 내건 간판도 꼭 그렇다. 발 빠른 정보통신부는 '신 성장동력'을 내세웠다. 지난 2월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지능형로봇 포스트PC 디지털TV 이동통신 디스플레이 반도체(시스템온칩) 텔레매틱스 내장형소프트웨어 디지털콘텐츠 등 9개 신성장품목을 제시했다. 산업자원부 간판은 '차세대 성장동력'이다. 스마트홈 디지털가전 포스트PC 비메모리반도체 전자부품ㆍ소재 BIT(바이오정보기술)융합기술 전자의료기기 바이오 환경ㆍ에너지 항공우주 등에 걸쳐 40개 차세대 성장품목을 내놨다. 과학기술부는 '포스트반도체 성장동력'간판을 내걸었다. 반도체 이후 성장엔진으로 초일류기술 50개 품목을 도출해 낸다고 한다. 범부처적으로 추진한다는 명분으로 보아 정통부 산자부의 메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작업 결과가 비슷하다는 것 자체를 문제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무엇이 먹거리인지가 분명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신' '차세대' '포스트' 등 그게 그것 같은 간판들을 보면 '신 성장 담당이 어디요?'라는 말이 나오기 좋을 상황이다. 노 대통령이 "5∼10년 뒤 한국이 먹고 살 것을 만들어 달라"며 진대제 장관을 임명했다는 정통부,기존산업 신산업 할 것 없이 성장동력의 플랫폼이 되겠다는 산자부,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등에 업은 과기부 그 어느 쪽도 만만치 않다. 통합 대상으로 거론되는 부처들이니 주도권 다툼도 심할 것이다. 그래도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경험법칙으로 십중팔구 또 하나의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코드'가 탄생한다. 적당한 간판 아래 각 부처는 나눠 가진 예산으로 자원배분의 맛을 만끽한 채(?) 또 그렇게 끝날 것이다. 우리나라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코드는 무려 2백10여개에 이른다. 국회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 '선택과 집중' '수요 지향' 등은 그럴싸한 명분일 뿐,돈 나눠주는 재미를 붙였는지 각 부처가 사업 만들기에 열중한 탓이다. 언제부터인가 정부 연구개발이 기관(institute) 중심이 아니라,사업(program) 중심으로 흐르면서 '기관 따로,사업 따로'가 됐다. 사업을 움켜쥔 부처들의 힘은 갈수록 커져만 간다(R&D 관료주의와 함께).반면 정작 연구를 수행하는 기관들은 모두 고만고만한 수준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정부출연연구소가 대표적인 사례다. 왜 우리에게 세계적 연구소가 없는지 그 이유는 여기서도 찾을 수 있다. 지난 10년동안 인력을 충원하고 조직을 키워 기관 육성만이라도 제대로 했더라면 지금 기업이 느끼는 신산업 성장여건은 크게 다를 수 있다는 아쉬움도 있다. 10년 후가 걱정되면 국가연구개발사업을 또 하나 벌일 게 아니라,정부출연연구소 연구중심대학의 연구소 등을 '신성장의 연구기지'로 키우는 게 훨씬 효과적인 투자가 아닐까. 연구소 고유기능에 따라 신성장의 미션과 사업예산을 부여하고,기관장에게 연구개발에 관한 일체의 권한을 주되,엄격한 성과책임을 묻는 일종의 '신성장을 위한 계약'을 맺는 방식도 생각할 수 있다. 세계 최고의 외국인을 책임자로 데려오거나 국제공동연구에 과감히 참여하는 등 새로운 발상들이 속출할 것이다. 드림팀을 구성하다 보면 산ㆍ학ㆍ연 협력은 자연스런 것이 되고,당장 이공계 고급인력 일자리도 창출될 것이다. 기업을 직접 지원하기가 갈수록 어려운 추세다. 10년 후 똑같은 아쉬움을 절감하지 않으려면 이런 내용의 '신성장 뉴딜정책'을 시도해 볼만도 하다. 논설ㆍ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