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자연,인간이 사는 곳..金秉柱 <서강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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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우리 안에 사람을 가두고 동물들을 우리 밖에 풀어 살게 하면 세계 제일의 환경친화국가가 된다.
자연보호가 유일의 국가목표라면 전 국민을 에버랜드에 집합시켜 감금하자.
새만금 현장에서 여의도까지 세걸음마다 절 한번 하는 삼보일배(三步一拜)의 고행시위대가 대중매체의 눈길을 끌었다.
그것도 두 무릎 꿇고 두 팔을 땅에 대고 머리를 땅에 닿도록 절하는 몸짓을 계속했으니 말이다.
오체투지(五體投地)는 티베트 불교신도의 고행이다.
티베트는 어떤 곳인가.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산맥 북쪽 고원지대 1백22만㎢에 인구 2백70만명이 살고 있다.
역사적으로 티베트 군대는 이웃나라를 떨게 하는 무서운 강군이었다.
8세기 께에는 실크로드를 가로막고,당시 중국의 수도 장안(長安,오늘의 西安)을 점령하기도 했으나,842년 국왕이 암살되자 영토확장 위세가 꺾였다.
13세기 몽골군이 중국을 제압했을 때,티베트불교계 일파(노란 모자파)가 반대파(붉은 모자파)를 꺾으려 적군을 끌어들인 결과 중국에 예속됐다.
'지혜의 바다'를 뜻하는 달라이 라마는 노란 모자파의 지도자 칭호다.
중국의 티베트 지배는 청나라 강희(康熙) 때 굳어져 1911년까지 수백년 계속됐다.
잠시 실질적 독립을 누리는 듯했으나 1950년 중국에 다시 편입됐고,티베트인은 중국의 55개 소수민족의 하나로 전락했다.
한때 강성했던 나라는 망하고,불교와 토속신앙을 결합한 복잡한 의식과 고행을 특징으로 하는 종교는 살아있다.
외국인에게 기이한 관광거리가 되는 오체투지가 성행하는 한,티베트에 근대적 의미의 복지후생이나 자주권 회복을 기대할 수 없어 보인다.
21세기 서울에 웬 오체투지인가.
갯벌보호,자연환경보호 때문이란다.
우리의 삶은 자연조건에 맞추어 이루어진다.
도시국가를 제외하면 남한의 인구밀도는 ㎢당 4백79명(2001년 기준)으로 세계 상위권이다.
네덜란드도 4백71명(2001년 기준)으로 인구조밀국이지만,도시용지에 있어서는 인구 1천명당 0.7㎢로 한국에 7배나 여유가 있다.
한국은 산지가 많아 쓸만한 땅이 좁은 반면,전 국토가 평지인 네덜란드는 꾸준히 간척사업을 벌여 해수면보다 낮은 땅이 국토의 25% 이상이 될 정도로 넓혔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 구조물은 1930년대 물막이공사를 벌인 조이데르해(海) 소재 길이 30㎞의 방조댐이다.
늘어난 국토 덕분에 국부가 증대했다.
1인당 GDP가 2만6천달러,실업률은 2.6%로 유럽 최저수준이다.
현명한 국토활용,개방적인 경제(수출입 의존도 1백30%),바로 선 법질서와 제도 등의 덕분이다.
인위적인 간척사업을 했대서 자연보호에 소홀한 나라도 아니다.
튤립 등 각종 꽃을 생산·수출하는 화훼단지들을 보라.주어진 자연조건을 적절히 활용하는 본보기다.
그들은 나라의 지정학적 위상을 잘 알아서 외국인 친화적 사회여건을 만들고 있다.
국민 모두가 외국어를 자유로 구사하도록 교육받고,이방인을 환대할 뿐만 아니라 굴지의 대기업들을 키워 해외투자를 추진해 국부를 늘린다.
더구나 자존심을 내세워 강대국과 부질없는 시비를 벌이지도 않는다.
한국은 4천7백67만여명(2001년)이 살기에 너무 좁다.
새만금 사업을 어느 정권이 어떤 사유로 착공했건,그 댐은 완공할 경제적 가치가 충분하다.
환경은 인간 때문에 훼손된다.
자연보호의 최선책은 인구감소조치다.
출산억제 이민장려 등의 방법으로 인구를 절반으로 줄인다면 자연보호는 크게 진행될 것이다.
반면 무조건적 개발을 동의할 수도 없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이것이 해답이다.
삼보일배 시위는 경건한 종교의식의 타락상이다.
시위대의 기세를 올려주는 정치인들은 어떤 밥 먹고,어떤 옷 입고,어떤 집에 살고 있는가.
의식주 어느 하나 토지와 무관하지 않다.
물론 그들의 눈은 우매한 군중의 표(票)밭에 있다.
한반도는 비좁다.
국토확장은 외국침략 이외의 방법이라면 좋은 일이다.
황해바다 반을 메우더라도 역시 그러하다.
현재의 국토도 선조들이 수십세대에 걸쳐 개간해 놓은 결과물이다.
오체투지에 국정이 휘둘리는 한,나라는 허약해진다.
사람은 역시 우리 밖에 살아야 인간다울 수 있다.
pjkim@ccs.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