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부품 소재, 영원한 숙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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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자유무역협정(FTA)을 앞당기려면 일본기업의 한국 투자가 확대돼야 한다."(윤진식 산업자원부 장관),"한·일 FTA 공감대가 있지만 문제는 기술이전 등 여건 조성이다."(윤영관 외교통상부장관)
노무현 대통령의 방일과 관련한 장관들의 이런 발언은 한·일 FTA와 대일 무역역조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사안임을 시사한다.
FTA에 적극적인 일본과 달리 우리를 수세적인 위치에 서게 하는 것이 바로 심각한 대일 무역역조인 것이다.
올해 대일 무역적자가 96년 1백57억달러 적자를 웃도는 사상 최대가 될지 모른다는 전망이다.
국교수립 이후 40여년 세월 단 한 해도 예외가 없었다는 무역적자라지만 우울한 기분을 떨칠 수 없다.
이런 무역적자가 부품 소재의 대일 의존도 때문이라는 것은 이제 초등학생도 익히 아는 사실이다.
부품 소재 무역적자는 매년 1백억달러 이상을 기록,대일 무역역조의 대부분을 설명해 준다.
이 때문에 모두가 부품 소재산업의 경쟁력을 높이지 않는 한 대일 무역역조를 개선할 뾰족한 방안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지난 20년 가까이 정부가 부품 소재 국산화정책을 펼쳐 왔건만 '잘 안되더라'는 패배감을 숨기지 않는다.
그 동안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정책'과 '시장의 선택' 사이에 '접점'이 형성될 수 없었던 측면이 분명히 있다.
우리 산업구조를 '수출해서 번 돈,남 주는 꼴'이라고 하지만,이런 구조는 일본이 강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채택한 성장패턴의 당연한 결과였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기술 '개발'은 고려 대상이 아닐 정도로 기술 '도입'이 상업적으로 최선의 대안이었다.
부품 소재 수입은 그런 기술 도입에 자동으로 연계됐으니 국산화 정책이 시장에서 통할 리 없었던 것이다.
그 때는 한마디로 시장의 선택이 접점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최근 시장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우리와 같은 전략을 취하는 후발자들로 인해 갈수록 부가가치가 줄어들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기업들로 하여금 부품소재에 눈을 돌리게 만들고 있다.
부품 소재 수요기업들이 이 분야의 기술개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사실 정부가 일본에 기술이전을 요구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비용도 줄이고 이전도 촉진할 가장 큰 유인책은 역시 기업의 기술개발이다.
특히 수요기업이 주도하는 기술개발은 파괴력이 있다.
그러고 보면 '부품 소재=중소기업'은 진작 깼어야 할 공식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번에는 시장이 아닌 정책이 접점을 가로막는 것일까.
시장이 변하려 할 때 정부가 부품 소재 수요기업인 대기업들의 투자를 적극 유인해 볼 만하다.
그러나 하필이면 이럴 때 한 쪽에서는 '투자는 투자고,개혁은 개혁'이라는 식의 대기업정책을 강변하고 있으니 부품 소재 관점에서 보면 이런 '엇박자'가 없다.
일본 부품소재기업의 투자확대도 그렇다.
크게 뒤떨어진 분야는 사실 투자유치가 좋은 대안이다.
꿈쩍도 안할 것 같은 일본이 지금 그런 기회를 만들어 주고 있다.
장기간 경기침체,모기업과 부품 소재 업체간 전속 계열관계 약화,고령화와 고비용 등 일본 내부 변화는 해외투자 동기로 이어질 만하다.
그러나 여기서도 우리는 엇박자가 될 일만 하고 있다.
백가지 투자유인책을 무력하게 만드는 노동정책이 그렇다.
잊자고 하면서도 쉽게 잊지 않는 게 일본기업들이다.
과거 한국 진출 기업들이 겪었던 노사분규를 상기한다면 결과는 보나마나다.
일본기업의 투자확대든 기술이전이든 우리 스스로에게 달렸다.
대일역조 개선을 넘어 부품 소재를 수출산업화하려면 더 말할 것 없다.
시기를 놓치면 '대일본 적자,대중국 적자'라는 생각하기조차 싫은 구도가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논설ㆍ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