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진들 "일은 언제하나" .. 임단협 챙기랴 · 노조 달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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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 한진중공업 사장은 13일 부산 영도조선소 내 크레인에서 단독 농성 중인 노조위원장을 설득하기 위해 직접 노조 간부와 담판을 벌였다.
지난달 16일 6차 임단협에 참석한 이후 두 번째다.
지난 11일 금속노조 경남지부장 회의 개최 여부를 둘러싸고 노조와 한 차례 충돌이 있었던 직후라 김 사장은 만사를 제쳐두고 노사문제에 매달리고 있다.
이날 고용보장을 단체협약에 명문화해 달라는 노조의 요구에 김 사장은 "고용보장은 기업 경쟁력에 달려 있는 것이지 사장이 협약서에 사인한다고 해서 가능한 게 아니다"라며 설득했다.
기업 경영진들이 할 일을 못하고 있다.
임단협을 쫓아다니고 시위 중인 노조위원장을 설득하느라 정작 본업은 뒷전이다.
심지어 사장실까지 점거당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이연재 현대삼호중공업 사장은 최근 노조원의 사장실 점거로 5일 동안 집무실에 발을 들여놓지 못해 선주사 미팅 등 중요 업무가 미뤄졌다.
회사측이 해고자 복직,주 40시간 근무제 실시 등을 논의하기 위한 특별 단체교섭에 응하라는 노조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게 이유였다.
전남지방노동위원회가 기존에 체결한 단체협약 기간이 2년 가까이 남아 있다는 이유로 노조의 쟁의조정 신청을 기각했지만 아직도 임금협상이라는 가시밭길을 넘어야 한다.
대림자동차 ㈜효성 등 전통적인 강성 노조를 둔 업체 사장들도 전전긍긍하고 있다.
창원의 한 기계업체 사장은 "산별교섭으로 전환되면서 노조 간부들이 지방노동청장 등 고위급 인사들과 직접 접촉하며 회사를 압박하는 수준"이라며 "노조 파워를 실감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한 조선업체 고위 임원은 "노조 설득도 힘든데 친노 정책을 펴는 정부 눈치까지 봐야 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업계 사장단도 사정은 마찬가지.최근 윤진식 산업자원부 장관과의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그랜드컨티넨탈호텔에 모인 현대 기아 GM대우 등 완성차 업체 사장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노사관계의 답답함을 토로했다.
김동진 현대자동차 사장은 "노사 합의가 안돼 전주 상용차공장 합작법인이 출범조차 못하고 있다"면서 "합작 상대방인 독일의 다임러크라이슬러가 큰 걱정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사장은 "노사 관련 일이 너무 복잡해 시간과 노력을 쏟다보니 다른 일을 제대로 못할 지경"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특히 자동차업계는 최대 업체인 현대차 노사 협상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워 왔지만 현대차 노조는 이날 노사 협상 결렬을 선언하고 본격적인 파업 준비에 들어갔다.
김홍열·이심기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