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의 '월요경제'] 한국판 '그린스펀'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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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조금, 저렇게 조금 말한다. 그러면 기자들은 완전히 혼란에 빠져 아무 기사도 쓸 수 없을 테니까."
'세계 경제대통령'이라는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자신의 화법을 설명한 대목이다.
그는 한 파티에서 어떻게 지내느냐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며 익살을 떨기도했다.
심지어 12년간 동거했던 아내 미첼조차 그의 우회적이며 모호한 청혼을 알아듣지 못해 "이 사람이 도대체 나와 결혼하겠다는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재임 16년간 그린스펀의 행동은 말과 어긋나지 않았고 신속·명쾌했다.
증권시장의 과열엔 '비이성적 활기'라고 직격탄을 날렸고 경제계의 디플레 우려에는 "무기가 있다"며 안심시켰다.
대통령이 네 번 바뀌도록 건재할 수 있는 것도 그래서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 외신 인터뷰에서 "한국의 그린스펀을 갖고 싶다"고 언급할 만하다.
한국은행이 갈팡질팡할 때마다 그린스펀ㆍFRB와 자주 비교되곤 한다.
오늘(16일) 국회 재경위가 주최하는 한은법 개정 공청회는 그래서 관심거리다.
중앙은행으로서 제역할을 못한 것이 한은 주장처럼 '정부의 간섭' 때문인지, 재정경제부의 반박처럼 '한은 사람들' 탓인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지난 주 3년짜리 국고채 금리가 하루짜리 콜금리를 한때 밑도는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최대 '마켓 메이커'인 한은은 손놓고 있었다.
금리정책을 암시하는 발언을 금지한 '함구령' 때문이었다.
대신 박승 한은 총재가 수시로 입을 열었다.
그러나 "경기회복 시기를 알 수 없다"(9일)고 했다가 "하반기부턴 회복될 것"(12일)이라고 또 말을 바꿔 시장에 혼란만 키웠다.
3% 성장도 낙관할 수 없다던 김진표 경제부총리도 2분기가 최악이고 3분기부턴 나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쯤되면 경제를 이끄는 '쌍두마차'의 경기예측 능력이 개미투자자만도 못하다는 비판이 나올 법하다.
이미 4월부터 주가는 달아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그만큼 시장은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오죽하면 한은이 경기를 비관할 때가 바닥이라며 주식을 사들이고 있겠는가.
김정태 국민은행장은 한 달여 간 '병상경영'을 끝내고 16일 복귀한다.
거대 은행의 행보가 새삼 시장의 관심사로 떠오를 전망이다.
SK글로벌 문제 등으로 골치 아픈 금융계에선 노 대통령의 은행장 간담회(18일)를 특히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