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노동정책 겉도는 이유 .. 이동우 <사회부장>

참여정부의 국정난맥은 '정치와 경제' 사이에서 오락가락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노동계 여름투쟁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참여정부는 두산중공업 화물연대 조흥은행 파업사태에서 줄곧 친노조 성향을 보여왔다. 소수파로 집권한 참여정부는 노사모에서부터 노동계에 이르기까지 외곽의 지지세력에 크게 의지해 있기 때문에 민노총 파업이 경제 살리기에 걸림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엄정하게 대응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철도노조가 국민의 발목을 잡고 '하투 선봉'에 나서자 곤혹스런 기색이 역력했다. 국민여론이 워낙 좋지 않았던 철도노조 파업은 경찰력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노동계가 '참여정부와의 결별 불사'를 선언하자 영 께름칙해 하는 모습이다. 공권력 투입으로 철도노조 파업을 해결한 직후인 지난 1일 노무현 대통령의 국무회의 언급에서도 정치(노조 배려)와 경제(살리기)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이 드러났다. 노 대통령은 이날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통해 조합비만 압류해도 큰 타격이 될 수 있다"면서도 "간부나 보증인한테도 손해배상을 하는 경우에도 일정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해 다시 한발 물러서는 태도를 보였다. 법과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투자촉진과 일자리 창출은 물건너간다는 경제계의 우려는 뒷전으로 밀리는 듯한 분위기. 이날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이 노동자의 제한적인 경영참여를 핵심으로 하는 신노사모델(네덜란드 방식) 구상을 발표한 것에서도 노조 지지와 경제 살리기라는 두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고 싶어하는 참여정부의 바람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네덜란드 방식이 우리 노사관계 수준이나 경제 여건에 비추어 실현 불가능한 신기루라는 점은 긴 설명이 필요없다. 주한 외국기업인들의 냉소적인 반응만 해도 그렇다. 이정우 실장의 구상에 대해 조셉 데이 주한유럽연합 상공회의소 부회장은 "한국은 이미 수년 전부터 유럽식 모델의 기초인 노사정위원회를 운영하고 있지만 3자간 합의가 제대로 안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다시 네덜란드 모델을 도입하겠다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요컨대 한국의 노사문화는 외국인의 안목(글로벌스탠더드)에서 볼 때 수준 이하라는 얘기다. 네덜란드는 지난 80년대 초반 노조의 비대한 파워로 거덜난 경제를 살리기 위해 근로자의 사회보장을 축소하고 기업의 해고를 자유롭게 보장하는 것 외에도 노조는 임금동결이라는 극약처방을 수용했다. 이는 경제를 위해 정치(노동운동)활동을 유보한다는 노동계의 자각이 전제돼야 작동할 수 있는 모델이다. 지금 한국의 노동운동이 이런 합의정신과는 너무도 멀리 있다는 점도 긴 설명이 필요없다. 노동운동을 주도하는 대기업노조는 올해 경제성장률이 최악의 경우 1%대로 곤두박질칠 것이라는 경고에도 아랑곳없이 7∼9%의 임금인상과 경영참여를 목표로 파업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네덜란드 모델 운운하는 것은 참여정부의 정책참모들이 노사 현실을 전혀 모르고 있거나 겉으론 경제 살리기를 내세우지만 실은 정치적인 지지세력 확장을 우선시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세계 4강 경제력의 독일 사민당 정부조차 최근 두 마리 토끼 잡기는 불가능하다며 복지축소와 해고자유 확대쪽으로 선회하는 판국에 소득 1만달러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한국이 우리가 한번 해보이겠다고 나서는 것은 차라리 만용에 가깝다. 60∼70년대를 통해 두 마리 토끼잡기(노조 지지와 경제 살리기)에 매달렸던 영국도 법과 원칙에 의한 노사관계(신자유주의)로 전환한지 오래인데 한국이 30년 전 유럽의 패러다임을 시도하려는 것은 난센스다. lee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