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정부 파업불씨 제공 말아야..尹桂燮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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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桂燮
보면 볼수록 파업은 국가 경제라는 산림에 발생하는 산불과 유사한 듯하다.
산불이 났을 때 최우선 과제는 화재를 진화하는 것.그러나 진화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산불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는 노력이다.
끝으로 일단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이를 산림과 주변 생태계가 다시 번성할 수 있는 기회로 사용하는 것도 산불 대처의 묘라고 할 것이다.
파업도 마찬가지다.
파업 발생시 가장 시급한 것은 조기에 종결시키는 것이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파업을 예방하는 것이다.
그리고 쟁위행위에 돌입했을 경우에는 파업을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기회로 삼으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이같은 '산불론'에서 보았을 때 현 정부의 파업정책은 어떻게 평가될 수 있을까?
최근까지 정부는 파업의 원인을 제공해 왔고 일단 발생한 파업을 경제 구조개혁의 전기로 승화시키지 못했다.
지난 5월 발생한 운송하역노조 화물연대 부산지부의 파업을 보자.정부의 늑장 대응으로 야기된 파업은 처리 방향에 따라 우리 경제의 고질적 문제 중 하나였던 물류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당면 현안은 중간업체와 차주, 그리고 운전기사들 간의 갈등이었지만 파업은 국민들로 하여금 우리 물류체계의 취약성을 피부로 깨닫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파업을 종결시키기는 했지만 터져나온 갈등에 대한 봉합은 서툴기만 했다.
물류비용 절감이라는 구조적 문제는 파업 이후에도 미결인 채로 남아있고 또 다시 파업이 발생할 경우 수출입 업체가 겪을 손해를 최소화할 대책 역시 강구되지 않았다.
전해지는 소식이라곤 노조 주장이 전폭적으로 수용됐다는 것 뿐이었다.
조흥은행 파업 역시 화물연대와 대동소이했다.
조흥 파업은 한국 경제의 또 다른 구조적 문제인 금융분야의 저효율성을 개선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파업 기간 중 거래 중소기업들이 큰 곤란을 겪었고 일반 고객들은 수조원을 인출하는 대소동이 벌어져 그 어느 때보다 국민들의 눈길이 곱지 않았다.
정부는 여론을 등에 업고 피합병 금융기관 노조의 과도한 요구는 수용할 수 없다는 원칙을 천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원칙 천명은 고사하고 노조 주장을 대폭 수용하면서 마무리됐다.
이와 비교해 보았을 때 철도노조 파업에서 정부는 진일보한 모습을 보였다.
파업을 신속하게 종결시켰을 뿐 아니라 철도 노동자들의 요구를 거부해 '공사화'가 따라야 할 원칙을 분명히 했다.
일단 발생한 쟁의를 경제구조 개혁의 준거를 제시하는 기회로 활용한 것이다.
하지만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철도노조 파업은 정부의 편향된 노사관계 접근법과 정책 일관성의 부재로 인해 잉태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노사문제를 약자 대 강자의 문제로 파악하면서 정부는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고 주무장관이 공공연히 주장해온 마당에 노조가 사측과의 협상에 만족할 이유가 없었다.
국가기관의 구조개혁 문제를 국가 경제 운영의 효율성 제고라는 관점보다는 정치적 고려에 따라 백지화, 전면검토를 거듭하는 정부라면 다소 무리한 요구도 받아줄 것이라는 기대를 할 만도 했다.
산불을 진화하긴 했지만 정부는 산불의 원인을 제공했던 것이다.
물론 낙담은 아직 이를지 모른다.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는 6개월도 채 지나지 않았고 일각에서는 내년 총선만 끝나면 대통령의 노사정책도 일변할 것이라고 하니 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같은 낙관론은 근거가 희박해 보인다.
오히려 정부는 앞으로도 파업의 씨앗을 뿌릴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노조의 경영참여를 부분적으로 인정하는 네덜란드식 노사관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같은 회의론에 힘을 실어준다.
주한 EU 상의조차도 실현 가능성을 의심하는 노사관계 모델.이를 도입할 경우 노조는 올 가을부터 임금인상, 자유무역협정 반대, 경제특구 제정반대 등에 덧붙여 경영참여를 쟁점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의도와는 상관없이 정부는 단위사업장에서 불거진 강경노선에 대한 반발과 부정적 여론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동운동 진영에 다시 한번 조직원들을 결집,거리로 나설 새로운 이슈를 제공할 것이다.
과연 정부의 노동정책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눈 앞에 펼쳐진 푸르른 산림을 보자 불현듯 산불 걱정이 뇌리를 짓누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