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시장에 간 경제부총리

"손님도 없는데 부총리라도 와서 물건 좀 팔아줘야지." 지난 12일 새벽 남대문 시장.실물경기 점검차 이곳을 방문한 김진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대하는 상인들의 반응은 예상대로 냉랭했다. "'높은 양반'의 의례적인 '쇼맨십' 아니냐"며 무표정한 얼굴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던 상인들은 경기 상황을 묻는 김 부총리에게 짜증 섞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영세 상인들 다 죽게 생겼다"는 하소연에서부터 "주차장 등 손님 편의시설을 확충 해달라"는 정책 제언까지 거침없는 발언이 쏟아져 나왔다. 극심한 내수 침체로 활기를 잃은 새벽 시장처럼 상인들의 목소리에는 피곤함이 듬뿍 묻어 있었다. 이에 대해 김 부총리는 "정부가 많은 노력을 하고 있으니 조금만 참으면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며 하반기 경기전망에 대한 설명을 함께 곁들였다. 한 상인은 "워낙 똑똑한 분이 준비돼 있는 답을 하니 뭐라 대꾸할 수가 없다"며 아쉽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어디선가 '탁상공론'이란 말도 스쳐가듯 흘러나왔다. 경기한파가 가실 줄 모르는 상황에서 서민생활 안정을 책임지고 있는 '경제 수장'이 상인들에게 냉담한 반응을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인의 말처럼 그렇게 '똑똑한 부총리'가 속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공이 많은 배처럼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려온 새 정부의 경제정책과 뒷전으로 한참 물러나버린 경제 부총리의 위상.분배와 형평을 중시해야 한다는 청와대의 섣부른 경제 훈수에 부총리로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반성때문은 아니었을까. 넓은 그라운드만 바라보는 벤치의 부상선수처럼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잡지 못했다는 아쉬움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노조에 치이고 정치권에 밀려 국가 경제의 큰 그림을 그릴 시간조차 없어 보이는 그가 안쓰러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날 방문이 14일 하반기 경제운용계획 발표를 앞두고 급조된 '민생투어'였다는 지적은 차치하더라도 김 부총리가 경제 팀장으로서 제대로 한번 '실력발휘'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시간이 됐기를 바란다. 이정호 경제부 정책팀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