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환희의 송가

베토벤(1770∼1827)의 삶은 병마로 인한 고통과 외로움,단절의 연속이었다. 7살 때부터 무대에 서기 시작해 20대에 이미 뛰어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주목받았지만 1800년께부터 귓병으로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는 그러나 1802년 '오라, 죽음이여.내 너를 기꺼이 맞으리라'로 끝나는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쓴 뒤에도 인생을 포기하기는커녕 작곡에 전념, 불후의 명작을 발표했다. 1815년 이후 청력을 완전히 잃는 가혹한 운명에 부딪치고도 그는 삶의 어느 한 부분도 외면하거나 저버리지 않았다. 교향곡 '운명'에서 삶을 적으로 보던 그는 '합창'에 이르러 삶과의 대화합을 시도했다. 1824년 5월 '합창'의 초연 당시 객석의 환호소리를 듣지 못했는데도 죽기 바로 전까지 '한 줄도 안쓰는 날은 없다'고 했을 정도다. '합창'은 성악을 곁들인 최초의 교향곡이다. 4명의 솔리스트와 남녀 혼성합창단이 등장하는 이 곡은 화해와 희망의 상징이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던 해 마지막날 브란덴부르크문 앞에 모여든 사람들 위로 울려퍼진 것도 이 곡이었거니와 국내의 신년·송년음악회 모두 이 곡의 우렁찬 합창소리로 막을 내린다. 곡의 원본은 악보론 처음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이 곡의 하이라이트인 4악장의 '환희의 송가'는 실러의 시에 곡을 붙인 것으로 원래 '환희(Freude)'가 아닌 '자유(Freiheit)'를 위한 송가였으나 검열 탓에 환희가 됐다. 찬송가 13장 '기뻐하며 경배하세'로도 유명한 이 노래는 누구나 한번 들으면 따라 부를 만큼 쉽고 힘차다. '환희여,신의 아름다운 광채여,그대의 힘은 잔인한 현실이 갈라놓은 것을 다시 결합시킨다. 그대의 다정한 날개가 깃드는 곳에서 모든 사람은 형제가 된다. (중략) 서로 손을 마주잡자,형제여'라는 내용의 이 노래가 유럽미래회의의 결정에 따라 EU의 국가(國歌)가 된다는 소식이다. 노래는 그것을 부르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묘한 힘을 갖는다. 교가나 사가가 은연중 일체감을 조성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환희의 송가'가 하나의 유럽을 만드는 데 얼마나 기여하게될지 궁금하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