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 업그레이드'] 목표 설정의 중요성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은 참 좋은 비전이다. 앞으로 7∼10년 안에 국민 1인당 소득을 지금의 2배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뚜렷한 지향점을 지닌 중장기 계획이어서다. 그러나 이제 2만달러 얘기는 그만하자.비전은 세워놓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중간 목표를 제대로 찾는 일이다. 특히 당장 올해,내년에 해야 할 과제들을 집어내는 조치가 필요하다. 달성가능한 목표는 제쳐두고 먼 얘기만 한가롭게 하다가는 비전은 달성되기 어렵다. 목표 설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우리 월드컵 도전사에 잘 나타나있다. 우리 축구는 목표 설정을 잘못하는 바람에 지난 86년 멕시코 월드컵 이후 98년 프랑스 월드컵까지 4회 연속 본선에 진출하면서도 1승도 올리지 못했다. 이 네 번의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 대표팀의 목표는 '1승'이 아니었다. 속으로는 '한번만 이겨봤으면' 했지만 대외적인 목표는 항상 '16강 진출'이었다. '16강 진출'과 '월드컵 첫 승'이라는 목표는 사실 엄청난 차이다. 이 목표에 따라 전술이 완전히 달라진다. 16강에 진출하려면 예선 3게임 가운데 최소 1승1무는 거둬야 한다. 거기다 골득실까지 신경 써야 한다. 지더라도 골을 적게 먹어야 하니 '전반 수비,후반 역습'이라는 기묘한 작전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슈팅 숫자에서만큼은 세계 정상급인 공격축구를 자랑하는 팀이 16강 진출이라는 목표 때문에 수비축구를 선택하는 잘못을 범한 것이다. 시원한 슛 한번 제대로 못하고 무기력하게 끌려다니는 경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만일 '월드컵 첫승'이 목표였다면 결과는 완전히 달려졌을지 모를 일이다. 한번 이기는 것이 목표이면 예선 세 게임 하나하나가 모두 승부처가 된다. 처음부터 우리의 장기를 살려 공격적으로 맞붙는 호쾌한 게임이 됐을 것이다. 승리를 챙길 가능성도 훨씬 높았다. 우승이나 4강 진출을 목표로 하는 정상급 팀들은 한달 가까운 본선 일정 전체를 염두에 두고 컨디션을 조절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강하게 밀어붙이는 팀에는 약하게 돼있다. 한번 이기는 것은 절대로 작은 목표가 아니다. 그것이 자신감으로 자라 다음 월드컵 때는 16강 진출을 목표로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그래서 하버드대의 존 코터 교수 같은 변화경영전문가는 기업에서 구조조정 등 변화를 추진할 때도 먼저 작은 성공 경험을 만들기를 권한다. 그래야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회사 전체에 퍼지기 때문이다. 히딩크 감독은 그런 점에서 경영자였다. 그는 지난해 월드컵에서 16강 진출 전략은 짜지 않았다. 오로지 첫 승리만을 목표로 내세웠다. 4강까지 내리달린 파죽지세는 첫승 이후 생긴 자신감의 결과였다. 나라 경영도 다를 바 없다. 최악의 불황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월드컵 첫승'과 같은 실천하기 쉽고 달성가능한 구체적 목표다. 그래야 우리가 가진 자원을 집중할 수 있다. 계속 2만달러만 얘기하다가는 어정쩡한 작전만 양산하게 된다. '경제시스템 선진화' '사회 통합적 노사관계 구축' '시장 및 공공 개혁' 등이 그런 작전의 예다. 축구선수들이 딱딱한 작전 때문에 호쾌한 슛 한번 제대로 날리지 못했듯 이런 거창한 구호만 있으면 기업들에도 숙제만 쌓인다. 투자를 더 해야 할지,지배구조를 먼저 개선해야 할지,아니면 노사안정에 최선을 다해야 할지를 판단하기 어려워서다. 투자 10% 더하기,생산성 10% 더 높이기,채용 10% 늘리기 같은 촌스럽고 멋없는,그러나 실속있는 목표들을 제시하는 지혜를 기대해본다. 경영전문기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