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법이 지켜지려면..강만수 <디지털경제硏ㆍ이사장>

오늘은 1948년 7월 17일 우리 헌법이 제정된 날을 기념하는 제헌절이다. 그동안 헌법은 파괴되거나 무시당한 적이 많았다. 법 중에 법이라는 헌법이 이러할진대 그 아래의 법들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선거가 끝날 때마다 선거법과 정치자금법 위반이 나오더니 지금 여당의 지난번 대선 자금이 얼마인지를 놓고 야단들이다. 나라를 끌고 가는 지도자들이 이러하니 법의 영이 설 리가 있겠는가. '법대로 하자'는 말은 우리에게 '막 가자'는 말로 쓰인다. 한 곳에 대를 이어 사는 농경사회는 유목사회와 달리 법보다 정서나 관습이 앞선다고 한다. 유목사회의 전통을 가진 서구의 '법치주의'나 '법의 지배'가 정착하기 힘든 것 같다. 정치지도자들이, 노동조합원들이, 대학생들이 법을 무시하고, 정부는 방관하기 일쑤다. 힘이 있거나 떼를 쓰는 사람에게 법이 무력하다면 사회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일 뿐이다. 이런 사회가 발전하는데 한계가 있고 이런 한계는 우리를 1만달러 국가에 주저앉게 할지도 모른다. 제헌절을 맞아 어떻게 불법과 무법의 한계를 돌파해 법이 지켜지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법(法)은 물이(水) 흘러간다(去)는 글자로 구성돼 있다. 물 흐르듯이 상식과 순리에 맞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평균인의 과반수가 지키지 못하는 법은 입법자가 범법자"라는 말대로 누구도 지키지 못하는 법은 입법자인 정치인 그들이 범법자다. 정치인들 스스로 지킬 수 없는 그런 법은 만들지 말았어야 한다. 지키는 것이 유리하고 득이 되는 법이 돼야 한다. 미국의 관리들이 비교적 깨끗한 것은 급여수준도 높지만 도덕심보다도 뇌물을 받다가 파면 당했을 때 손해 보는 노후의 연금 때문이라고들 한다. 큰 법뿐만 아니라 교통신호 같은 작은 법부터 지키는 것이 득이 되게 바꾸고 어려서부터 교육돼야 한다. 시골길을 가다보면 지나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신호등을 만들어 놓거나, 신호등을 만들어 오히려 체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새벽길 가다보면 좌회전하는 차는 하나도 없는데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다보면 짜증도 나고 위반하고 싶은 유혹도 생긴다. 선진국은 비보호좌회전을 원칙으로 하고 시골길에는 사람이 건널 때 버튼을 누르게 하거나 가능하면 신호등을 만들지 않는다. 만들어진 법은 지도층부터 먼저 지켜야 한다. 윗물이 구정물인데 아랫물이 어떻게 맑아지겠는가.역사를 주도한 나라치고 '노블레스 오블리지(noblesse oblige, 높은 사람의 의무)'정신을 바로 세우지 않은 나라가 없었다고 한다. 정치지도자들은 불법으로 수억원을 주무르면서 어떻게 하위공직자나 일반 국민에게 법을 지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한 푼도 받지 않았다' '1달러도 북한에 보내지 않았다'던 실세들이 줄줄이 잡혀가는 것을 보면서 '법의 지배'는 아득함을 느낀다. 만들어진 법은 엄정하게 집행돼야 한다. 불법적인 집단행동이 있을 때마다 나오는 '엄정한 법집행'은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이 돼버리기 일쑤다. 모르긴 하되 힘 있거나 떼쓰는 사람들에게 엄정한 법집행을 본 적이 별로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서 법 위에 정서가 있고 정서 위에 떼 있다고 하지 않는가. "선거법을 지키면 떨어진다. 여당일 때는 현금만 거래하고 걸릴 때 딱 잡아떼면 되는데 야당이 되고 보니 걱정이다"라고 어떤 정치인이 말했다. 법집행을 담당하던 어떤 고위관리는 고속도로가 막힌다고 경찰의 선도로 거꾸로 달리다가 말썽이 된 적도 있었다. 대도(大盜) 조세형은 법정에서 '무전유죄 유전무죄(無錢有罪 有錢無罪)'라는 말을 남겼다. 최근 뒤늦게 알려진 억대의 강도사건은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있는지 경찰이 나서 묻어버리고 피해자가 강도들의 변호사를 대어주었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우리의 법치주의 수준을 말해주는 얘기들이다. 법이 지켜지려면 보통사람이면 지킬 수 있고, 지켜야 유리하게 상식과 순리대로 법을 만들고, 높은 사람부터 먼저 지키고, 정해진 법은 엄정하게 집행돼야 하는 이런 지극히 상식적인 일들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는 교통신호를 잘 지키던 박사가 귀국하게 되면 지키지 않는다고 어떤 이가 말했다. 우리의 '법치주의' '법의 지배'는 언제 제대로 확립될 수 있을까. mskang36@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