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실패'에서 배운다] (6) '독일의 민간은행은'

독일 민간은행들은 대출 등 여신제공 뿐만 아니라 출자 채권인수 등 투자은행 기능도 갖춘 종합금융 은행(Hausbank)이다.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겸업은행이라는 뜻의 '유니버설 뱅크'로 불리기도 한다. 독일 은행들은 기업 경영에도 적지않게 간여한다. 독일 기업의 지배구조는 경영을 책임지는 이사회와 임원을 선출하고 회사경영을 감시하는 권한을 가진 감사회로 이원화돼 있다. 은행들은 주주대표와 노조대표로 구성되는 감사회에 주주대표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다. 감사회는 '은행들의 감시 창구'라고 불릴 만큼 은행이 상당한 통제권을 행사한다. 기업지배구조 전문평가회사인 데미너신용평가(Deminor Rating)가 지난해 각국의 기업지배준칙을 기업들이 어느 정도로 수용하고 있는지를 평가한 결과 유럽 평균이 63%로 나온데 비해 독일은 35%에 불과했다. 독일이 전체 경제규모에서 영국을 앞서면서도 증권시장 시가총액에서는 절반을 간신히 웃도는데 불과한 이유이다. 2003년 5월초 기준으로 런던증시는 2조9천억유로, 프랑크푸르트증시는 1조6천억유로이다. 독일은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을 지배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은행 출자가 보편화돼 있다. 취약한 주식시장을 대신해 은행들이 산업자본 형성을 도와온 결과다. 봅 한케 런던경제학스쿨(LSE) 정치경제학과 교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이 부족했던 독일이 효율적으로 산업자본을 동원하기 위해서는 은행 중심의 금융시장이 불가피했다"며 "전후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룬 일본과 독일의 공통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들어 은행과 기업의 관계에 균열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독일 은행들이 글로벌화에 속도를 내기 위해 미국 회계기준(GAAP)을 새롭게 적용하면서 적지않은 보유주식들이 위험자산으로 분류되고 있어서다. 자산규모로 세계 3위인 도이체방크는 지난 98년부터 보유 주식을 본격적으로 처분하기 시작했다. 장부가격 기준으로 98년 12억유로(약 1조6천억원)규모의 주식을 매각한데 이어 99년 21억유로, 2000년 27억유로 어치를 각각 팔아치웠다. 2001년에는 주식시장 침체로 매각금액이 16억유로로 주춤했으나 지난해에는 뉘른베르거베텔리궁스AG 콘티넨탈AG 등 모두 51억유로어치의 주식을 처분했다. 독일 정부는 이처럼 기업들이 자국 은행들로부터 '미운 오리' 취급을 받자 경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여러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이사회와 감사회 임원들의 보수와 스톡옵션의 환산가치를 공개하도록 규정한 것이 대표적 예다. 기업들은 개정된 기업지배준칙에 따라 새로운 제도를 받아들이고 직접금융 비중을 높이고 있다. 독일식 은행 중심 기업지배구조에 미국식 주주자본주의가 스며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