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2) 박성용 <금호 명예회장>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71)은 그 세대로선 보기 드문 '르네상스적 인물'이다. 학계 관계 재계 문화계 등을 두루 거쳤다. 팔방미인들이 대개 그렇듯 자신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룬 것이 없단다. "노는 것이 제일 재미 난 것 아녀?" 라고 말할때는 위악(僞惡)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박 명예회장은 우리 나이로 예순다섯이던 1996년 금호그룹 회장직을 동생(고 박정구 회장)에게 물려주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이후엔 금호문화재단을 맡아 문화예술 저변을 넓히는 일에 몰두해왔다. 얼마나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지 지난해 5월에는 한남동 집에도 자신의 아호를 딴 음악홀 '문호(雯湖:안개낀 호수라는 뜻)홀'을 만들었다. 인터뷰는 지난 16일 서울 신문로에 있는 금호생명사옥에서 시작, 롯데호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2시간30분에 걸쳐 이뤄졌다. -메세나협의회장이 되시면서 '1사1문화' 운동을 벌이겠다고 선언하셨는데(그는 지난 4일 손길승 SK회장의 뒤를 이어 제4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이전에는 1그룹1문화 운동이었는데 그걸 더 열심히 하자는 취지지요. 꼭 문화예술만 하자는 것도 아니어요. 남는 땅에 나무 좀 심어놓으면 그게 식물원이 되는 것 아닙니까." -식물원이라니요? "순수문화예술만 지원할 생각은 아니예요. 사람들을 위한 정서적인 쉼터를 만들어주는 것이라면 모두 메세나운동이니까요. 우리가 식물원이 어디 있습니까? '가든'만 수두룩하지요. 전화번호부 찾으면 전국에 수천개가 나온데요. 그게 전부 갈비집이라는게 문제지요." -그룹 회장까지 지내신 분이니 돈은 잘 거둬지겠지요. "(손사래를 치며) 웬걸요. 평소 잘 아는 사람도 전화하면 회의한다며 피합니다. 나중에 기다려도 전화 응답이 없어요. 하기야 직접 만나면 거절하기가 얼마나 어렵겠어요. 이해는 하지만 문화산업에 돈 안쓰는 회장들이 그러면 화가 납디다." -원래 문화에 관심이 많았습니까. 학계, 재계가 훨씬 더 보람있는 분야 아닌가요. "(옛날 생각을 하는듯 눈을 지긋이 감고) 경제학에도 꿈은 있었지요. 세계를 놀라게 할 큰 논문을 내고 싶었지…. 그런데 그게 정말 자신 없더라고요. 그래서 포기한거요." 박 명예회장의 이 얘기는 사실 겸양이었다. 박 회장은 세 번만 실리면 노벨상을 받을 수도 있다는 '인터내셔널 이코노믹 리뷰'에 논문을 2개 실었다. -경영에는 '취미'가 없었습니까. "고생도 많았고 취향에도 안맞아 처음부터 딱 예순살이 되면 그만두려고 했었지요. 그런데 동생들(고 박정구 회장, 박삼구 금호회장, 박찬구 금호석유화학사장)이 말리고 아시아나 시작한지도 얼마 안됐고 해서 못 관둔 거예요. 더 있으면 안되겠다 싶어 예순다섯이 되던 해에 미련없이 그만뒀지. 손을 떼니 얼마나 편하고 좋은지 몰라 (그가 65세에 은퇴하면서 금호엔 65세가 되면 동생들에게 회장직을 물려주는 전통이 생겼다. 재계에서는 이를 '형제경영의 금호'라고 부른다)." -기업 경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은 그래도 있겠지요. "금호실업이라는 종합상사를 하다가 다 까먹은 것이 기억나요. 그때 과감하게 사업철수를 결정했으니 다행이지 계속 갖고 있었으면 요즘 SK글로벌 같이 됐을 거예요." -그래도 재계에서 친하게 지내는 분들은 많았을 것 아닙니까. "없어요. 서로 바쁘니까 친구가 되기도 어렵고요. 저녁에 술을 같이 할 정도가 돼야 친구지. 이승윤 장관(전 경제부총리, 현 금호 고문) 정도나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 -참, 술은 많이 하시기로 유명하시죠. "1주일에 사나흘은 국산양주 '베리나인 골드' 한병씩 했지요. 그것도 98년 척추수술을 하고 나서는 끊었어요. 경영하는게 그래서 힘들어요. 술도 마셔야 하고 골프도 쳐야 하고. 다 부질없는 일인데." -전경련 회장 같은 경제단체장 제의는 없었나요. 학계에서도 유명하셨고 충분히 하실만한 자격이 있으셨는데. "누가 날 시켜요? 시켜줘도 안했을 거고. 나는 그런 거 싫어해요." 교수도 싫다, 대기업 회장도 귀찮다, 경제단체장도 시시하다. 어찌보면 배부른 소리다. -그럼 도대체 뭐가 재미있습니까. "노는 거지요. 취미 문화 활동이 재미있어요. 안그래요?" -문화쪽은 어릴 때부터 잘 맞으셨나 보지요. "클래식 음악 참 좋찮아요. 1주일에 세번은 금호아트홀 공연을 표 사서 가요. 중학교 때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을 처음 들었고 서울대 다닐 때는 돌체다방이나 르네상스 다방 같은데서 커피 한 잔 시켜놓고 두세시간씩 듣기도 했지요." -자녀들이 문화쪽 일을 한다면서요. "이상해요! 전공은 둘 다 다른 걸 했는데…. 딸 아이(박미영ㆍ37)는 캐나다에서 현대무용을 하고, 아들(박재영ㆍ33)은 LA에서 영화공부하고 있어요." -섭섭하지 않으세요. "섭섭한게 뭐 있어요. 자기들이 하고 싶은 것 하는 것인데. 경영을 맡길 생각도 없었고."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어떤 일인가요. "문화예술계의 저변을 넓히는 일이지요. 기업들이 직원들 교육에 문화예술공연 관람만 의무화시켜도 예술계엔 엄청난 힘이 되는 거예요." 박 명예회장은 관심이 없다고 했지만 그래도 나라 경제와 기업경영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경제는 언제나 좋아질 것 같습니까. "좋아지기 어렵다고 봐요. 1,2년내엔 고개들기 쉽잖을 거예요." -경영자들이 회사 꾸리기도 어렵겠지요. "그건 아니에요. 요새는 경영하기가 더 쉬운 것 같아요. 배운 것 그대로 실천하면 되잖아요. 옛날에는 배운 대로 해도 안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동생분에게 가끔 조언을 해주시나요. "나보다 잘하고 있는데 조언해 줄게 뭐 있어요. 박정구 회장 때도 일절 간섭 안했어요. 대신 동생들이 자주 들러서 그룹 돌아가는 상황을 전해줘요. 안그랬으면 솔직히 섭섭할 수도 있었겠지…." 박 명예회장은 지난 14년간 공을 들인 금호현악4중주단을 최근 해체한 것을 많이 아쉬워했다. 멤버를 자주 교체해 불가피하게 내린 조치였다. 대신 이제는 음악 영재를 더 많이 찾아내고 악기 대여 등 지원을 통해 세계적인 음악가들로 키워낼 계획이다. 요즘은 식물원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나무도 많이 심는다. "나무는 심어놓고 10년은 지나야 겨우 뿌리를 내리고 바람에 견딜만 해진다"는 그의 말에서 그가 왜 유독 어린 연주자들에게 관심을 쏟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 [ 박성용 금호 명예회장 약력 ] * 1932년 전남 순천 출생 * 1950년 중앙고등학교 졸업 * 1950년 서울대 문리대 입학 * 1959년 미국 일리노이대 경제학과 졸업 * 1962년 미국 예일대학원 경제학 석사 * 1965년 미국 예일대학원 경제학 박사 * 1965~68년 미국 케이스웨스턴리버스대, 미국 UC버클리대 교수 * 1968~70년 대통령 비서실 경제비서관 * 1971~74년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 1974~79년 금호실업 대표 * 1979~84년 금호그룹 부회장 * 1984~96년 금호그룹 회장 * 1996년~현재 금호그룹 명예회장, 금호문화재단 이사장 * 1998년 예술의전당 이사장 * 2003년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 회장 권영설 경영전문기자ㆍ김재창 기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