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돌다리 두드리기' 그만..李宇鏞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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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 우리 선조들의 가르침이다.
일을 경륜함에 있어서 신중에 신중을 기하라는 충고다.
지난 24일과 25일 이틀에 걸쳐 산업자원부와 과학기술부가 국책연구원인 산업기술연구원을 앞세워 우리 경제 현안을 놓고 '돌다리 두드리기'를 위한 국제회의를 주선했다.
국내 전문가들도 일부 참여했지만 외국으로부터 제법 이름 있는 인사들을 대거 불러모은 규모 있는 회의였다.
이 회의의 주제는 우리나라의 성장동력을 개발하는 것이었지만,회의의 얼굴격인 첫 번째 세션은 우리경제가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로 뛰어오르기 위한 방안을 찾는 시간이었다.
이 세션에서 제의된 것을 간추려보면 대략 이러하다.
시장경제제도로 이데올로기를 통일하고,무한 경쟁이 허용되는 역동적인 경제를 구축하라/아직은 분배보다는 성장에 무게를 두어라/정부의 역할과 규제를 과감히 축소하고,기업가 정신을 되살려내도록 하라/ 윤리를 바로 세우고 엄한 법집행으로 기업을 보호하며,세계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도록 하라/교육,특히 대학교육은 기업과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해낼 수 있도록 개편하라.
이 세션에서 이른바 세계적 전문가들이 우리에게 준 충고다.
요컨대 '시장경제 메커니즘에 충실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충고들 중 어느 하나라도 새롭고 색다른 것이 있는가.
무릎을 치며,"바로 이거야"하고 반길만한 아이디어라도 있다는 말인가.
이 모두가 국내 전문가들이 입만 열면 되뇌던 말이다.
이 모임을 주선한 경제부처나 연구원조차도 색다른 묘책이 나올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왜 구태여 이렇게 번거롭고 값비싼 말잔치를 벌였는가.
우선,경제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기업인은 물론 온 국민이 두려워하고 있는 마당에 경제책임부서로서 "우리도 놀지 않고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둘째는,두둑한 사례비에 융숭한 대접을 받은 초청인사들이 인사치레로라도 "한국인은 전쟁의 잿더미에서 세계 12위의 경제를 일구어낸 저력을 갖고 있습니다/IMF의 시련도 어렵지 않게 뛰어넘은 강인한 나라입니다/이런 저런 몇 가지 점만 개선하면 2만달러 경제로 또 한번 도약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라고 장황하게 찬사를 늘어놓을 것이고,이것이 국민의 불안감을 다독거리는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기대도 추정 가능한 의도일 수 있다.
그러나 엘리트 관료가 모여있다는 우리 경제부처가 이러한 치졸한 동기로 이 모임을 마련했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가장 그럴 듯한 추정은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니었나 싶다.
드러내놓고 "우리 경제가 잘못돼가고 있소"라고 고백하지 않는 것이 체질화돼 있는 우리 관료들이지만,이 시점에서 그나마 시장경제 메커니즘의 중요성과 필연성에 대한 이해가 있는 경제부처가 외국 전문가의 입을 빌려서라도 청와대를 설득해서 제 길로 들어서도록 유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추정이다.
이 모임을 대통령 기조연설로 열고 청와대 만찬으로 마감한 것만 보아도 이 추측이 가장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이제 청와대가 반응을 보일 차례다.
우리나라 전문가들이 되풀이해서 제안했고 외국전문가를 불러 확인한 이 결론을 청와대가 더 이상 희석시키거나 굴절시킴 없이 받아들이는 일만 남았다.
다시 강조하지만,이번 국제회의 결과서도 드러났듯이 우리경제가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일구어내기 위한 해법은 오직 하나뿐이다.
경제성장을 정책우선순위의 맨 윗자리에 매김하고,성장의 비결로 타당성이 입증되고 또 입증된 시장경제제도를 단호하게 실천하는 것이다.
대통령 임기의 10분의 1이 경과하고 있다.
달리 대안 없는 분명한 진로와 방법을 놓고 언제까지 돌다리만 방망이질하고 있을 것인가.
제발 이번 국제회의가 마지막이 됐으면 싶다.
끝 간데를 모르는 경쟁과 쏘아놓은 화살처럼 쾌속으로 변화하는 불연속의 시대에는 결단과 추진의 타이밍이 신중을 기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지금 이 나라에는 리더십다운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리더십이란 미래를 내다보고 국가의 번영과 국민의 행복을 위해 가장 적절한 비전을 선택하며 이를 이루기 위해 온 국민이 하나가 돼 신바람 나게 뛸 수 있도록 만드는 역량인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