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경기진단] (1) '高手'들의 경기진단법

아무리 많은 거시경제지표를 사용한다고 해도 현재의 경기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지표들의 조사시점과 발표시점에 한 달 이상 시차가 있기 때문이다. 경제 '고수'들만의 독특한 '감(感)'이 위력을 발휘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최우석 삼성경제연구소 소장은 경기를 어떻게 파악하느냐는 질문에 "정부가 발표하는 통계를 보고 경기를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말부터 꺼냈다. 너무 늦다는 얘기다. 대신 은행장과 대기업 임원 몇 명을 만나보면 느낌으로 알 수 있다고 했다. 또 대기업 몇 개를 골라 신규투자를 얼마나 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경기를 예측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실물경기 흐름을 선도하는 업종의 영업상황을 체크하는 것도 필수. 최 소장은 "개인적으로는 치과와 성형외과를 유심히 들여다 본다"며 "보철을 하거나 코를 높이는 사람들이 줄어들면 경기가 안 좋다는 신호로 해석한다"고 설명했다. 식당 예약건수나 백화점 매출도 경기판단을 할 때 빼 놓지 않고 살펴보는 요소로 지목했다. 신상훈 신한은행장은 경기를 예측하는 자신만의 노하우로 '산'을 꼽았다. 신 행장은 "건강관리를 위해 산을 자주 찾고 있는데 최근 들어 등산객들이 부쩍 늘어났음을 느낄 수 있다"며 "복잡한 세상에서 일탈하고픈 마음이야 인지상정이겠지만 불황의 바로미터라는 점에서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경기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지표로 '연체율 변동'과 '신용불량자 추이'를 꼽았다. 직접 관리하는 고객이 4백여명쯤 된다는 이동호 대우자동차판매 사장은 "차를 바꿀 때가 된 고객들에게 식사나 골프를 하자고 은근히 권유해 보면 경기상황을 판단할 수 있다"며 "괜스레 '아직 차 잘 나간다'거나 '성능이 아주 좋던데'라는 말을 늘어 놓으면 경기가 안 좋은 때"라고 말했다. 이밖에 인터넷 경매사이트에 중고물품이 많이 올라오거나 병맥주 판매는 줄어드는 대신 소주와 생맥주 소비량이 늘어나면 불황이라는게 경제전문가들의 귀띔이다. 반면 오후 2∼5시께 패밀리 레스토랑에 주부들이 북적이거나 명절 때 기업들이 주문하는 단체 선물의 단가가 높아지고 주문량이 늘어나면 경기가 좋아질 가능성이 높다. 외국에서도 경제정책 결정자나 대기업 CEO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경기진단법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경기점검이 필요한 시점이 되면 뉴욕시의 쓰레기 물동량을 파악한다고 한다. 쓰레기 물동량이 늘어나면 소비성향이 그만큼 호전되고 있다는 지표이고 반대로 줄어들면 경기가 침체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신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