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두 외국인의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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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에 강한 나라를 만들려면 학생들이 수학을 싫어하게 만들어라." '아리마의 역설'이다.
세계 청소년 수학올림피아드 등에서 한국 학생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지만 그들에게 수학을 좋아하는지를 물어보면 그렇다고 대답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며 얼마 전 한국을 방문했던 일본의 물리학자 아리마 아키토 박사는 말했다.
한국과학문화재단 석학초청 포럼에서 그가 강조한 것은 한마디로 'Enjoy Science(과학을 즐겨라)'다.
과기부 장관이 한국의 이공계 기피문제,이공계 공직진출 확대 등을 소개하자 그는 주입식 입시용 교육이 아니라 '과학을 좋아하게 만드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동문서답식(?)으로 응답했다.
그는 또 KIST 연구원과의 대화에서 "연구하는 사람은 절대 행정직을 맡지 말고 연구자로서 성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요약하면 훌륭한 연구자들이 많이 나오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이공계 기피의 본질적인 해법이라는게 그의 지론인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기술고시의 사실상 행정고시화,고위직 이공계 할당제 등 이른바 이공계 공직진출 확대방안이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동일한 잣대로 비교할 수 없는 중국을 들먹이며 이공계 공직진출 확대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이 오히려 설득력을 반감시키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공계의 공직 진출ㆍ보직ㆍ승진에 무슨 차별적 요소가 있다면 이를 시정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문제는 고시제도를 이공계 기피를 해소할 적극적인 대책쯤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인문계 이공계를 떠나 고시제도가 지금까지 인력흐름에 어떤 파행을 가져왔고 대학교육 현장을 어떻게 만들어 놨는지는 설명이 필요없다.
특히 과거는 그렇다 치더라도 앞으로도 그러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공계를 선택하는 것이 행정고시에 더 유리하다고 판단되면 인문계 갈 사람이 이공계로 쏠릴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을 두고 과연 이공계 기피가 해소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정말 의문이다. 어떻게 해야 같은 기회라도 공직진출보다 연구자이기를 훨씬 선호할지 보다 본질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또 한 사람의 외국인도 의미 있는 조언을 했다.
얼마 전 산업자원부 주최로 차세대 성장산업 국제회의가 열렸다.
비유를 들어 설명하자면 이렇다.
새로 부임하신 선생님(청와대)이 '한국의 차세대 성장동력은 무엇이냐'는 문제를 냈다.
학생들(정부 각 부처들)은 출제자의 의도를 너무도 잘 읽었다.
모든 정성을 쏟아 '무슨 산업,무슨 기술분야'식의 답들을 적어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선생님이 곧 발표할 '차세대 성장동력-10대 산업'이라는 정답을 기다리는 중이다.
그런데 한 학생(산업자원부)은 자신이 적어낸 답을 국제적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외국인 친구들을 불렀던 것이다.
그런데 외국인 친구들은 엉뚱한(?) 답을 적어냈다.
특히 미국의 대표적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가 그랬다.
차세대 성장동력을 10가지로 요약한 것까지는 정답에 가까웠다. 하지만 산업과 기술이 아니라 기업가 정신 고취,민영화 추진,교육개혁과 인적자본,중국의 활용 등 조건과 변수들을 적시한 것이다. 그는 무엇이 정부가 할 일이고 무엇이 기업이 주도할 일인지를 고심한 것이 분명했다.
산업과 기술을 적시하는 것과 조건과 변수를 적시하는 것이 뭐가 그리 다르냐고 할지 모르지만 따지고 들어가면 경제사회 전반의 시스템 차이로 이어질 만큼 다른 것이다.
전자에 아무리 에너지를 쏟아 부어도 후자가 뒷받쳐 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갈수록 분명해질 것이고 보면 성장동력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는 너무도 자명하다.
논설ㆍ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