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南北經協의 방향..南成旭 <고려대교수·북한학>

기업인의 자살은 사회의 큰 손실이다. 한 명의 유능한 기업인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최소 20여년의 경영수업을 필요로 한다. 특히 기업 오너이면서 전문적인 경영수업을 받은 기업인은 결단과 도전을 요구하는 기업 환경에서 매우 소중한 존재다. 그런 측면에서 정몽헌 현대 회장의 자살은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정 회장을 죽음으로 몰고 간 여러 요인들을 추론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의 강도 높은 집중적인 수사,대북사업에 따른 경영상의 곤란 가중과 경협에 대한 일부 국민과 정치권의 부정적 인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사건은 기업경영,특검수사와 남북경협이라는 많은 이질적인 외생변수들을 내포하고 있다. 발전적 역사를 창조한다는 전제하에서 이와 같은 변수를 중심으로 향후 남북경협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기로 하자. 첫째,수익성의 확보다. 지난 98년부터 시작된 현대의 금강산 관광사업은 분단과 냉전을 극복하고 화해와 협력의 토대를 구축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남북간 최초의 정상회담으로 결실을 맺었고 51만명의 남측 사람들이 북측을 방문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한반도에 전쟁 위험을 감소시키고 국제적으로 국가신인도를 높였다. 그러나 이 사업은 방문객수에 따라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6년3개월간 무조건 9억4천2백만달러를 지급하는 일괄계약(Lump-Sum)을 체결함으로써 비즈니스의 기초를 무시했다. 결국 경협은 기업의 수익성 유지를 전제로 추진돼야 한다. 둘째,투명성 확보다. 현대의 정상회담을 둘러싼 대북송금 논란은 대북거래가 투명하게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1백50억원+α와 관련된 검찰수사는 주변 관료와 정치인들이 입을 다무는 순간 법 앞에 취약한 기업인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현대의 5억달러 송금이 7대 경협사업권을 따내는 대가였는지 아니면 정상회담 성사에 기여하는 찬조금이었는지 기업인이 보다 투명한 거래를 진행했다면 오늘날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웃돈을 주어야 움직이는 북한과 상대하는 입장에서 완벽한 거래내역 공개는 어려울지라도 최소한 푼돈이 아닌 거액의 거래는 주인이 분명한 만큼 돈에 꼬리표를 달아서 주고받도록 해야 한다. 셋째,대북사업 규모의 적정성 문제다. 대북사업은 초기 투자가 많이 들고 수익은 중장기적으로 나온다. 자기 자본이 충분치 않고 외부 차입에 의존할 경우 사업을 지속하기 어렵다. 대북사업 참여가 주식시장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업의 능력을 뛰어넘는 대북사업은 기업의 존립 자체를 위태롭게 할 우려가 있다. 따라서 기업 순이익의 10%를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업이 추진되도록 해야 한다. 넷째,경협에 대한 남북한의 차이를 인식해야 한다. 남한은 경협을 통해서 통일로 가는 초석을 마련하는 '통일지향적 경협'을 추진하는 데 반해 북한은 경협을 통해서 체제를 확고히 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체제수호적 경협'을 지향한다. 따라서 남북 양측은 경협과정에서 총론적인 합의에도 불구하고 각론과정에서 많은 이견에 부딪친다. 경제체제가 다르고 경제주체들의 지향하는 바가 상이함에 따라 사업 본래의 성과를 단기에 거두기는 용이하지 않다. 이러한 불안정성을 고려하여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끝으로 경협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경협은 기업에 수익성을 확보하는 사업임과 동시에 한반도에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평화산업이다. 특히 고임금과 저효율에 시달리는 국내 중소제조업들의 입장은 대기업과 달리 사정이 다급하다. 중국과 동남아의 진출도 과거와 달리 이점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북측의 노동력과 토지를 남측의 자본과 기술로 접목시키는 경협은 어쩌면 시대적인 소명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평화산업이 기업의 능력만으로 추진되기는 어렵다. 경협의 시장경제원리 입장을 견지하더라도 정부의 일정부분 참여는 필요하다. 투자보장,이중과세방지,청산결제,상사분쟁 해결 등 경협의 4대 합의서가 가동되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가 기업에만 경협을 맡기는 것은 직무유기다. 정 회장 사건이 남북경협이 차원 높은 제도화의 길로 들어서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