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점검-2003 노동계 夏鬪] (1) "현대車 달력엔 11개월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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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의 달력은 11개월.'
파업으로 점철된 현대차에 따라붙는 자조적 표현이다.
3만9천명의 노조원을 거느린 국내 최대 사업장인 현대차 노조는 노조활동이 자유로워진 지난 87년부터 올해까지 16년간 94년과 97년 2년을 제외하고 해마다 부분 및 전면파업을 벌였다.
파업 기간도 길어 5년을 제외하면 모두 15일 이상 파업을 벌였다.
IMF사태 직후인 98년에는 무려 36일간 전면파업을 벌인 적도 있다.
연평균 파업일수는 16일.
때문에 현대차는 매년 사업계획을 작성할 때 한 달간의 파업을 미리 감안할 정도다.
그래서 '11개월짜리 달력'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사업계획에 파업을 감안한다고 해도 피해를 줄일 방법은 없다.
회사 관계자는 "노조가 파업을 해도 납기만 맞춰 발주처에 물량을 대면 되는 조선업체 등과 달리 컨베이어 생산체제인 자동차업체는 파업하는 그 시간부터 생산 차질과 매출 손실이 발생한다"고 하소연했다.
실제 현대차는 국내 제조업계에 노조 설립 광풍이 불어닥친 87년 노조 설립과 관련, 21일간의 전면파업을 실시하면서 파업행진의 시동을 걸었다.
이듬해에도 25일간 전면파업에 나서 사측이 18일간의 직장폐쇄라는 극약처방을 내놓았다.
이어 93년 임금협상 당시엔 2일 전면파업과 27일 부분파업으로 인해 정부가 긴급조정권을 발동하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91년 95년 96년 98년엔 파업에 견디다 못한 사측이 아예 휴업을 단행해버렸다.
노조는 파업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외환위기 이후에도 휘둘러댄 셈이다.
현대차가 재계와 노동계의 대리전을 치르는 것도 정례화되다시피 했다.
96년과 지난해 노조가 파업에 들어간 명분은 노동법 개정이었다.
올해는 노조가 주5일 근무제 도입, 비정규직 처우 개선, 노조 경영참여 등 민노총의 지침을 핵심 쟁점화하는 바람에 1백10일간의 교섭과 22일간의 파업 진통을 겪어야 했다.
GM과 포드 노조가 98년 이후부터,도요타자동차 노조는 50년째 무분규를 유지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해외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현대차 노조는 오히려 역주행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파업의 대표주자격인 현대차의 노동생산성은 어떨까.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현대차 노동생산성은 30시간(차 1대를 생산하는데 걸리는 시간).
일본의 닛산(16.83시간) 미쓰비시(21.33시간), 미국 GM(24.40시간) 포드(26.14시간) 등과 비교해 턱없이 낮다.
그런데도 임금은 매년 8~9%씩 올렸다.
브레이크 없는 파업행진이 이대로 이어지다가는 2010년 글로벌 톱5 자동차메이커로 진입한다는 현대차의 야심이 막대한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파업은 내수와 수출 차질의 유형적인 피해는 물론 대외신인도에도 타격을 미친다.
회사 관계자는 "올해 부분파업으로 해외 딜러들로부터 신뢰를 잃었을 뿐 아니라 품질에 대한 신뢰조차 상실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고 전했다.
회사가 처한 상황, 경쟁업체의 동향, 자동차산업의 전망은 아랑곳하지 않는 파업은 결국 자신의 발목을 잡는다는 얘기다.
오기소 이치로 한국도요타자동차 사장은 "도요타 본사에서 분석하는 현대차와의 기술과 품질 격차는 5∼6년으로 본다"면서도 "파업의 불안 요소를 감안하면 그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