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탄력적 대손충당금제' 성공조건..조하현<연세대교수·경제학>

예상보다 경기침체가 오랫동안 지속됨에 따라 정책당국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얼마 전 금융감독원은 금융기관의 기업투자 활성화를 위한 정책들을 발표했으며 거기엔 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인 BIS비율의 1등급 기준을 현행 10%에서 9%로 하향조정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BIS 비율이 1%포인트 하향조정되면 은행권의 기업대출 여력이 60조원 이상 증가하기 때문에 기업대출 확대효과는 어느 정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금감원의 이러한 정책은 IMF 위기 이후 자기자본비율 확보에 치중한 건전성 감독이 은행으로 하여금 리스크가 큰 기업금융을 외면하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가계대출을 확대시켰다는 문제점을 해소하려는 측면도 있다. 최근 금감위원장은 경기상황에 따라 대손충당금의 적립비율을 조정하는 '동태적 대손충당금'(Dynamic Provisioning) 제도의 도입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페인 중앙은행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는 이 제도는 은행대출의 경기순행성으로 인해 경기변동의 진폭이 확대되는 문제점을 완화하기 위해 고안됐다. 일반적으로 금융기관은 경기침체시 기업도산 등으로 인해 부실자산이 늘어나므로 대출을 기피하는 성향을 보이지만 경기호황 시에는 기업신용도의 상승, 담보가치의 증가 등으로 리스크 수준이 낮아지므로 대출을 확대해 이윤을 증대시키려 한다. 그러나 경기호황시의 과다한 신용팽창은 이후 경기침체시 부실자산의 확대를 야기함으로써 은행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주요 원인이 된다. 뿐만 아니라 금융기관의 이러한 대출행태는 경기변동의 진폭을 확대시키므로 경제시스템의 불안정성을 증대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경제이론에서는 은행신용의 과다한 팽창과 축소로 인해 국가경제가 불안정해지는 현상을 '금융가속도 과정'(financial accelerator)이라 한다. 따라서 바젤위원회를 비롯한 각국 금융감독당국은 은행대출의 경기순행성을 완화해 경제의 불안정성을 낮추려는 정책과 제도에 관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감독당국이 검토하는 동태적 대손충당금 정책이 은행의 기업대출을 활성화시켜 과도한 경기침체를 막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이 제도를 시행할 때 금융시스템의 건전성과 관련해 몇 가지 사항들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첫째, 이러한 정책이 은행건전성 감독의 완화 분위기로 이어져서는 안될 것이다. 금융감독당국의 기본 임무는 경기부양이 아니라 금융기관이 노출된 리스크 정도에 따라 적절한 규모의 자기자본과 대손충당금을 준비하도록 해 금융시스템의 건전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따라서 은행들이 과다한 리스크에 노출되지 않도록 체크하는 감독기능은 더욱 강화돼야 한다. BIS비율과 대손충당금은 기본적으로 은행자산의 리스크 정도를 감안해 결정되는 것이므로 정확한 리스크 측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BIS비율과 대손충당금 적립비율을 완화시키는 정책은 향후 금융기관의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금감원은 개별 은행들의 리스크 관리능력을 정확히 평가해 이에 상응하는 탄력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둘째, 현재 제기되고 있는 정책은 그 목적이 도식적인 은행건전성 감독으로 인한 경기변동의 진폭이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므로 향후 경기가 회복될 경우 자기자본을 확충하고 대손충당금 비율을 높일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할 것이다. 만약 이를 단순히 경기회복을 위한 단기적인 정책으로 인식한다면 향후 심각한 금융불안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 마지막으로,거시경제상태에 따라 탄력적인 금융감독정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경기예측 능력이 전제돼야 한다. 만약 현시점이 경기저점을 이미 통과해 경기회복이 시작되는 국면이라면 현재 제기된 정책들은 그 유효성보다는 부작용이 더욱 클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융감독기관도 리스크와 경기변동의 연관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거시경제에 대한 분석능력을 획기적으로 제고하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