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라의 브라질-도전과 변화] (3) '반대파도 끌어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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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라에 앞서 브라질을 통치한 대통령은 '종속이론의 창시자'로 유명한 대학교수 출신의 페르난도 카르도수다.
1994년 선거에서 당선돼 중도우파 연합정권을 구성한 카르도수는 강력한 물가안정 시책과 공기업 민영화로 90년대 후반 브라질 경제의 성장을 이끌었다.
그 덕에 98년 재선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카르도수 앞에는 미처 예상치 못한 난관이 도사리고 있었다.
집권 2기를 맞은지 1주일도 지나지 않아 상파울루 리오데자네이로에 이어 세번째로 규모가 큰 미나스제라이스 주(州)가 연방정부에 대한 부채상환을 일방적으로 유예한다고 발표한 것.
미나스제라이스의 주지사는 다름아닌 전임 대통령 이타마르 프랑쿠.
같은 당인 사회민주당(PSDB)내 카르도수의 최대 정적(政敵)이었다.
중앙정부에 대한 지방정부의 반란은 곧 바로 국가신인도 추락으로 이어졌다.
해외 금융기관들은 일제히 채권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카르도수의 집권 2기동안 브라질 경제는 환율 폭등과 경상수지 적자 확대로 엉망이 됐다.
결국 브라질은 또 다시 IMF에 손을 벌려야 했다.
정치인들간의 무분별한 반목이 초대형 경제위기를 초래한 것이다.
카르도수의 '실패'에 비추어볼 때 지난 5월28일 브라질의 메이저 정당이자 야당인 민주운동당(PMDB)이 룰라의 집권 연정에 참여한 것은 이 나라 경제에 청신호가 아닐 수 없다.
룰라는 오랫동안 카르도수를 지지해온 PMDB를 끌어들임으로써 지난 5일 공무원연금 개혁법안을 하원에서 3백58대 1백25의 압도적인 표 차이로 통과시키는데 성공했다.
또 PMDB의 가세로 연합정권은 57석의 상원 의석을 확보했다.
개혁법안에 대한 상원의 의결정족수(49석)를 크게 웃도는 의석이다.
노심초사했던 연금제도 개혁법안이 9월중 상원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거의 1백%에 가까워졌다는 점에서 PMDB의 연정참여는 룰라에게 '기념비적인'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상파울루대의 마리아 킨주 교수는 "민주사회에서 개혁의 성공에 절대로 필요한 것은 의회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대통령의 리더십"이라며 "소수 정권인 룰라가 거대 야당을 파트너로 삼은 것은 놀랍고도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 보수층 끌어안기 =급진 좌파 성향의 룰라는 대통령 선거에서 세번의 낙선을 경험했다.
지난 89년 처음 나선 선거에서는 47%의 높은 지지를 받고도 콜로르에게 졌고 카르도수와 겨뤘던 94,98년 대선에서는 25%와 33%의 득표율을 올리는데 그쳤다.
룰라는 자신에 대한 거부감을 완화시키기 위해 1단계로 성향이 다른 인물들과의 제휴를 시도했다.
우익성향의 기업인 출신인 자유당(PL) 당수를 러닝메이트(부통령)로 영입한데 이어 지난 85년 갑자기 사망한 네비시의 러닝메이트였던 호세 사르네이와도 손을 잡았다.
사르네이는 특히 과거 군부정권을 지지했던 탓에 룰라의 노동자당(PT)과는 도저히 제휴할 것 같지 않은 인물이었다.
룰라는 또 선거기간중 후보로 나섰던 중도좌파 사회민주당(PPS)의 시로 고메스 후보와 사회당(PSB)소속 안토니 가로칭요 후보의 지지도 이끌어냈다.
룰라에 대한 보수층의 불안심리를 잠재우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은 브라질 제2의 민영은행 이타우의 로베르토 세투발 은행장이다.
그는 선거전 카르도수의 후계자인 조제 세하 사회민주당 후보를 지지할 것으로 예상돼온 인물.
하지만 그는 지난해 10월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 자리에서 현지 금융인과 기업인들을 모아놓고 "룰라 후보가 차기 브라질 대통령이 된다는데 한치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며 "그는 분명히 대통령이 돼 브라질을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 개혁을 위해서라면 =집권 노동자당(PT)은 총 5백13석의 하원의석중 91석, 총 81석의 상원의석 가운데 고작 14석의 의석을 갖고 있다.
27개주 가운데 노동자당에 적을 두고 있는 주지사는 3명에 불과하다.
룰라는 소수파 정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집권후 기업인 야당지도자 지방주시사들과 수시로 만나 경제현안을 논의하고 협조를 당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브라질리아의 대통령궁은 월요일이나 화요일 정도만 빼고 1주일 내내 비어있다.
주초에 대통령궁에서 업무를 본 뒤 지방도시를 순회하며 사람들을 만난다는 얘기다.
룰라가 성향이 다른 정치인들및 정당과의 제휴를 확대하면서 같은 노동자당내에서는 볼멘 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연초 중앙은행 총재에 야당 소속인 '엔리케 메이렐레스'를 전격 임명하자 일부 의원들은 '룰라가 변심한 것 아니냐'며 노골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룰라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밀어붙였다.
오히려 해당 의원들을 징계하기까지 했다.
그는 얼마전 '소신을 관철시키려다가 친구를 잃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
"집권한다는 것은 결혼하는 것과 비슷한데 아내가 친구들을 싫어하면 아무래도 그들을 전보다는 덜 보게 되는 것 아니냐."
결국 룰라는 개혁법안 통과라는 대의를 위해 어떤 정파와도 손을 잡을 수 있는 자세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분명 좌파적 환경에서 좌파적 사고를 하며 자란 인물이지만 때를 기다리며 우회할 줄 아는 지혜도 갖고 있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지배적인 평가다.
브라질리아=조일훈ㆍ강은구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