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라의 브라질-도전과 변화] (4ㆍ끝) 또 하나의 과제 '노동개혁'

상파울루에서 남쪽으로 30km 가량 떨어진 상 카에타노의 제너럴모터스(GM)공장. 지난달 8일 찾아간 이 공장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셀틱, 코르사, 벡트라, 오메가 등의 승용차를 생산하는 1공장과 자피라와 같은 미니밴을 만드는 2공장, 에스텐 같은 픽업을 조립하는 3공장이 모두 멈춰있었다. 시설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인력만 빼고 1만5천명의 근로자들이 한달간 휴가를 갔기 때문이다. 한달씩 공장을 놀려도 되는지 궁금했다. 페드로 루이즈 디아스 대외홍보담당 이사는 "브라질 노동법이 그렇게 돼있다"고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1년 근속하면 법정 휴일을 빼고도 한달간 유급휴가를 주도록 돼있다는 것. 마침 경기불황으로 차도 안팔리는 터라 집단으로 휴가를 보냈다는 설명이다. 경기가 좋지 않으면 인력을 줄여야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디아스 이사는 "그게 돈이 더 든다"고 손사레를 쳤다. 브라질 노동법은 회사측이 1년 일한 근로자를 해고할 경우 퇴직금 뿐만 아니라 한달치 월급을 추가 지급해야 한다. 여기에다 근로자가 1년동안 납부한 근로소득세의 40%를 정부에 납부해야 하고 나중에 신규 채용할 때는 '인두세' 형태의 세금을 또 내야 한다. 기업이 해고 근로자의 소득세 40%를 정부에 내야하는 이유는 우리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브라질 노동법은 근로소득세 환급분을 기업에 떠넘기고 있다. 정부는 이 돈에다 자체 재원으로 마련한 일종의 실업수당을 더해 해고 근로자에게 돌려준다. 이처럼 고용을 '유지'한다고 해서 임금이 오르지 않는 것도 아니다. GM측은 올들어 극심한 불경기 속에서도 임금을 18%가량 올려줬다. 지난 6월 상급단체인 '포르카 신디칼(노동자의 힘)'과 협상을 벌인데 따른 것이었다. 물론 사흘동안의 전면파업이 있었다. 디아스 이사는 뜻밖에도 이런 현실을 당연하게 여겼다. "브라질에선 흔한 일이고 늘상 대비하고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문제는 경기가 언제 살아나느냐다. 공장 가동률이 50% 밖에 되지 않고 적자도 5년째 지속되고 있다. GM의 다른 사업장 같았으면 벌써 철수했을 것이다. 그러나 잠재력이 큰 브라질 시장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룰라가 잘 해낼 것으로 믿는다. 정치적인 상황만 보면 분명히 투자 매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달중 연금제도 및 세제개혁 법안이 상원을 통과하면 룰라의 경제개혁은 5부 능선을 넘는다. 남은 것은 농지개혁과 노동개혁. 앞선 개혁법안이 이른바 '가진 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면 노동개혁은 바로 룰라 자신을 추종했던 이들을 겨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과연 룰라는 '친정'을 상대로 개혁을 단행할 수 있을까. 아직은 설(說)만 무성할 뿐 가시적인 움직임은 없는 상태다. 분명 룰라는 선거공약으로 몇가지 방안을 제시했고 취임 후에는 '노동 귀족'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노조를 간접 비판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정도가 다였다. 룰라는 연금개혁에 노동문제까지 동시에 끌어들였다간 자칫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근로자들이 '대통령이 모든 일을 잘 처리해줄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는 것도 당분간 룰라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룰라의 '침묵'은 오래 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당장 현지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들이 생산 비용이 너무 높다며 아우성이다. 실업률을 낮추고 기업들이 보다 많은 인력을 고용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노동시장에 개입해야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상파울루에서 다국적 기업의 인력관리 컨설팅을 맡고 있는 호세 프란시스코 페레이라 가르시아씨는 "브라질의 노동법은 지나치게 복잡하고 까다롭다"며 "노동법을 바꿔야 기업들이 좋은 여건에서 양질의 인력을 뽑아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윤곽이 드러난 룰라 정부의 노동개혁 방안은 노동비용 감축과 노조 구조 현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재 브라질의 노동법은 1940년대 이탈리아 무솔리니 정권의 노동법을 모태로 하고 있어 시대에 크게 뒤떨어진다는 지적이다. 특히 기부금만을 노린 노조들이 급조되면서 노조의 대표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최근 신규 창업이 부진한데도 브라질 노동부에는 하루 평균 50건의 노조설립 신청서류가 접수되고 있다. 룰라 정부는 또 신규 채용에 따른 '인두세'를 폐지하고 노조에 대한 근로자의 의무적인 기부금 납부를 폐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포르카 신디칼 등 노조 상급단체들은 일단 관망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자신들이 개혁 대상으로 떠올랐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설마'하는 분위기도 있다. 룰라는 위원회를 만들었다. 섣불리 법안을 만들었다가 당장 자신의 모태인 노동자당으로부터 반발을 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 재계 노조로 구성된 '국가노동포럼'.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노사정위원회를 만든 것. 아직 이 포럼의 구체적인 활동상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룰라가 일방적으로 근로자들의 환심을 사는 방향으로 포럼을 망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기업인들이 믿고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궁 대변인 앙드레 싱제흐는 "대통령은 근로자와 사용자들이 협상을 잘 진행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상파울루=조일훈ㆍ강은구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