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 ‥ MBC 17일 방송

1909년 10월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는 세 발의 총성이 울렸다. 31세의 안중근이 한반도와 만주 지배의 원대한 꿈을 목전에 둔 이토 히로부미를 제거한 것.그리고 90여년이 흘렀다. 일본인들은 지금 근대 일본을 확립한 최고의 영웅보다 그를 처단한 안중근을 존경한다. 매년 안중근 기일에는 그를 참배하는 행렬이 줄을 잇는다. MBC가 일본 후지TV와 공동기획한 특집 다큐멘터리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17일 오후 11시30분)는 동양 평화를 꿈꾼 한국 근대사의 영웅 안중근 의사와 그와 반대의 길을 걸었던 이토 히로부미의 필연적인 충돌 이유를 세계적 역사관을 통해 재조명한다. 이토는 메이지시대 최고 실력자이자 근대 일본의 헌법과 국가적 기반을 수립한 인물이다. 그는 제국주의 물결 속에서 동아시아 평화를 주창하며 일본이 그 선두에 서야 한다고 보았다. 이는 아시아 각국에 대한 지배전략이 되었고 결국 타국의 주권을 침해하고 동양 평화를 위협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같은 이토 사상의 대척점에 서 있었던 것이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이었다. 1910년 3월26일 사형 집행 전까지 여순 감옥에 수감됐던 안중근은 그리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자서전과 '동양평화론'을 집필했다. 그의 저격이 단순한 테러가 아님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이토에 대한 15항의 죄목을 열거하며 동양 평화의 교란자를 처단한 것임을 밝히고 자신의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였다. 각국의 독립과 균형 속에서 동양 평화를 주장했던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93년이 지난 지금 동아시아 평화와 공동체 구축의 과제를 풀어나가는 지침이 되고 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