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 美 기업 '백업시스템'

정전사태가 발생한지 30시간 가까이 지난 15일 밤 9시(현지시간)뉴욕 맨해튼은 평소와 달리 한산했다. 여느 때 같았으면 어깨를 부딪쳤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을 42번가도 지하철과 맨해튼 외부로 나가는 버스가 끊긴 탓인지 북적대지 않았다. 그 시간까지만 해도 여전히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고통을 겪는 사람이 50만명을 넘었다. 자정 무렵에서야 전 지역이 거의 정상화됐다. 그래도 9·11테러의 참사를 겪으면서 위기 대응 능력이 커진 탓에 경제 피해가 거의 없었던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많은 기업들의 준비는 돋보였다. 맨해튼에 자리잡은 골드만삭스는 정전사태가 발생한지 20초도 안돼 백업(Back-up)시스템을 가동시켜 아무런 문제 없이 모든 거래를 마쳤다. 직원들은 고객들의 거래내역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 밤 늦게까지 남았다. 다음 날 거래 준비까지 모두 끝내고 퇴근했다. IBM도 뉴욕주 서털링 포레스트에 백업 시스템을 가동시켰다.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이 곳에 있는 디젤 발전기가 즉각 돌아간다. 뉴저지주 저지시티에 있는 퍼싱 LLC도 임시 발전기를 증각 가동시켜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 회사는 은행과 다른 금융기관들의 결제를 지원해 주는 회사여서 정전으로 컴퓨터가 마비됐을 경우 연쇄 피해를 초래할 뻔 했다. 퍼싱 LLC는 다른 수많은 기업들 처럼 9·11테러 직후 이같은 백업 시스템을 갖췄다고 한다. 9·11테러를 겪으면서 위기대응 능력을 키우지 않았더라면 이번 정전만으로도 상상하기 어려울 혼란이 초래됐을 것이다. 정전 다음 날인 15일 뉴욕 증시가 정시에 개장돼 별 문제 없이 거래를 마친 것도 테러 이후 기술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대비가 이뤄졌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정전은 전기 소비량이 지나치게 많아졌다거나 그로 인해 전력예비율이 뚝 떨어졌다는 경고 한 차례 없이 갑작스럽게 발생했다. 그렇게 발생한 대형 사고였지만 준비된 기업과 내성에 다져진 국민들의 침착한 행동으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뉴욕=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