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앞뒤 뒤바뀐 'FTA 로드맵'

"겉돌고 있는 칠레와의 FTA(자유무역협정)부터 마무리지을 방안을 내놓는 게 순서 아닙니까?" 지난 30일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 결과를 지켜본 민간경제연구소 관계자의 첫 반응이었다.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는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과 동아시아 경제중심국가 실현을 위해 일본·싱가포르 등과도 이른 시일 내에 FTA협상을 개시하는 등 자유무역협정 대상국을 크게 넓혀나간다는 '기본 원칙'을 마련했다. 한국은 1백46개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 가운데 아직까지 FTA를 하나도 성공시키지 못한 6개국 중 하나로 'FTA 외톨이' 신세를 면치못하고 있다. 무역의존도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70%에 이를만큼 교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늦게나마 FTA 체결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일의 '순서'가 잘못된 것 아니냐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처음 체결한 칠레와의 FTA가 농민 등의 표를 의식한 국회의 비준연기로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럴싸한 'FTA 확대'라는 청사진을 나열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일본은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와 비슷한 산업구조를 띠고 있고,싱가포르도 기계 철강 등 수출입 구조가 한국과 중첩돼 있어 '칠레 홍역' 못지 않은 관련업계와 이해집단의 반발이 예고돼있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어가기 위한 정책도구로 FTA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데 이견을 나타낼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럴수록 FTA 추진의 당위성에 대한 대국민 홍보와 설득에 보다 진지한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런 노력은 소홀히 한 채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동북아 경제중심국가 실현 등 노무현 정부의 '구호 정치'를 위한 수단으로 FTA가 동원돼서는 안될 것이다. 한·칠레 FTA 비준이 겉돌고 있는 데서 보듯 FTA는 경제적 관점에서의 손실계산뿐만 아니라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토론을 중시하는 '참여정부'가 FTA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지켜볼 일이다. 이정호 경제부 정책팀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