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처럼 근골격계 판정때 돈 더 받으면 '누가 일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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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근골격계 질환을 앓으면 휴업보상금이 모두 월급의 1백10~1백30%나 된다구요? 그러면 누가 일을 하려고 하겠습니까"
미국 디트로이트에 위치한 세계 최대의 자동차 회사 제너럴 모터스(GM)의 밥 팍스 박사.
그는 휴업보상금이 평균임금보다 높으면 수 많은 '꾀병 환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며 한국의 제도가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인간공학을 전공한 팍스 박사는 GM 기술연구소에서 10년 넘게 근골격계 질환 예방 프로그램을 다뤄온 '근골격계 전문가'.
그는 "미국에선 근골격계로 받는 휴업보상금은 평균임금의 60~70%에 불과하다"며 "회사와 노동조합이 보상문제를 놓고 시간을 빼앗기느니 서로 협력해 예방에 만전을 기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팍스 박사가 근무하는 기술연구소의 인공공학실험실을 들어서면 병원에 들어선 느낌을 받는다.
인체해부도와 근골격 모형 등이 표준작업 매뉴얼과 함께 곳곳에 놓여있다.
"GM도 20년전 근골격계 질환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습니다.그 당시 노사는 인간공학위원회를 구성해 질환을 예방하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팍스 박사는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예방의무를 법제화한 한국 정부의 조치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미국에선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사용자의 예방 의무사항을 법제화하기보다는 노사 자율로 예방책과 판정기준을 마련해 시행합니다."
그 기준은 미국 산업안전보건청(OSHA)이 마련해 권고하고 있는 '예방적 인간공학 관리프로그램'이다.
◆인간공학(ergonomics)프로그램을 통한 예방=GM 역시 다른 사업장들과 마찬가지로 지난 84년 노동조합측의 문제 제기로 근골격계 질환이 산업재해의 쟁점으로 부상했다.
GM은 지난 87년 노사합의를 거쳐 근골격계 질환 대책을 지속적으로 추진,예방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
GM의 예방 프로그램은 노·사전문가,의료진,인간공학 전문가 등 6∼8명으로 인간공학위원회를 구성해 작업환경 개선과 예방 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근로자들은 정기적으로 작업 자세,작업 반경 등에 관한 교육을 정기적으로 받고 있다.
GM연구소의 존 밀 박사(인간공학)는 "미시간대학과 산학공동으로 작성한 설문지를 근로자들에게 정기적으로 돌려 근골격계 질환을 유발시키는 사업장의 유해요인을 조사해 시정하고 있다"며 "우리가 개발한 이 설문지는 자동차업종의 다른 업체들이 벤치마킹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연방 산업안전보건청에서도 참고할 정도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합리적인 자율지침과 판정="업무로 인한 근로자의 질환 발생을 예방하는 게 기업과 근로자 모두 윈-윈(win-win)하는 길입니다."
밀 박사는 GM이 근골격계 질환 예방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이같이 말하면서 노사간 인식전환을 통한 협력을 강조했다.
GM에선 지난 20년동안 예방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실시한 결과 전체 산재 사고가 9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으며 근골격계 질환도 눈에 띄게 감소했다.
그는 "올 연말에는 관계사인 한국의 GM대우에 근골격계 전문가를 보내 교육시킬 예정"이라고 밝혔다.
워싱턴 소재 미국의 노동부 산하 산업안전보건청(OSHA)의 엘리노 길 정책담당 과장은 "근골격계질환에 관한 법률을 강제로 시행하는 것에 기업들이 부담을 느껴 정부에서 산재예방 지침(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권고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에선 의학적으로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근골격계질환 판정을 둘러싼 판정시비를 막기 위해 의사 뿐만 아니라 인간공학 전문가들이 참여해 작업관련성에 대해 철저한 평가를 내린다고 설명했다.
디트로이트·워싱턴=정구학 기자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