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시장의 원칙을 지켜라 .. 車殷泳 <이화여대 교수·경제학>

미국은 1990년대에 유례 없던 장기 호황을 구가했다. IT산업을 비롯한 신산업의 물결이 일어 온라인 산업의 시대가 왔다고들 시끌벅적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현상을 기존의 경제학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며 새로운 패러다임의 필요성까지 역설하기에 이르렀었다. 80년대 미국 경제는 다른 나라에 내다 팔 상품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참담했고 일본은 미국의 대표적 기업들과 재무증권(Treasury bill)을 사들여 미국인의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았었다. 그런 미국이 90년대 들어 일본이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10년 동안 호황을 누렸던 이유는 유연한 노동시장을 통한 기업의 끊임없는 구조조정과 시장의 법칙을 존중하는 법과 제도의 정비,그리고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였다. 지금 한국경제가 방향을 잃은 듯하고 맥을 잡지 못한 채 표류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다. 대내외적인 경기침체로 인해 소비심리가 위축되어 있고 가계는 빚에 허덕이고 있다. 줄줄이 기다리고 있는 파업과 일관성이 결여된 정부 정책으로 불확실성은 높아만 가고 기업은 투자의욕을 잃은 듯하다. 정부는 확고한 경제의 청사진을 제시함으로써 국민들을 설득하고 이끌어 나가는 리더십을 보여주기보다는 말초적인 시스템 정리에만 골몰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이렇게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때일수록 원칙으로 돌아가서 다시 생각해보고 호흡을 가다듬는 것이 필요하다. 시장경제의 핵심은 기업의 경제활동에서 그 근간을 찾을 수 있다. 국민의 경쟁력은 기업의 경쟁력으로 응집되고 이것은 곧 국가의 경쟁력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기업의 경쟁력은 노동생산성과 임금구조가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최근 발표된 한국 근로자의 임금상승률이 노동생산성을 3배 이상 초과해 증가했다는 자료는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평균적인 파업 일수와 무노동무임금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현실에서 노동생산성의 향상은 그다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시장의 원칙은 기여한 만큼 보상받는다는 다소 상식적인 것이다. 임금은 노동생산성에 기초해 지불돼야 하는데 노동생산성과는 상관없이 경제외적인 물리적 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경쟁력을 치명적으로 악화시키는 원인이다. 지난 2001년 우리 제조업의 평균임금이 1천3백19달러인 데 비해 중국은 98달러로 우리가 13배라는 한국은행의 보고서는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특히 대기업과 영세기업의 임금상승률이 양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어 근로자들 간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고임금을 받고 있는 대기업 노조들의 계속되는 파업은 기업과 근로자,그리고 국가경제가 공생·공멸의 관계에 있음을 망각한 행동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여기에 6년 가까이 끌어온 주5일제 근무의 본격적인 시행은 기업에 10%에 가까운 인건비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는 2만달러 시대로 향하는 걸음이 바쁜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패턴에 대한 기대보다는 추가적인 경제의 주름살에 대한 걱정을 더 앞서게 한다. 막막할수록 원칙으로 돌아가서 생각하면 길이 분명하게 보일 수 있다. 경제주체들은 겨우 다시 진입한 소득 1만달러 시대에 걸맞게 요구하고 행동해야 한다. 시장의 법칙을 벗어나 노동생산성을 휠씬 상회하는 임금 인상요구는 자제되어야 한다.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고 경제시스템의 장기적 역량을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요구하는 지혜와 여유를 스스로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기업은 경영의 투명성과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투자활동을 촉진해야 한다. 생산요소의 단순한 추가 투입으로 부가가치를 향유하던 시대는 끝났음을 명심하고 미래 기술개발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정부는 일관성 없는 정책으로 섣부르게 시장에 개입하거나 실패한 유럽모형을 기웃거리기보다는 시장의 원칙을 존중하는 자세로 꾸준하게 경제친화적 시스템 정비에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다면 시장은 화답할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