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 업그레이드'] 되살아난 '대박'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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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현대홈쇼핑이 판매한 캐나다 이민 상품이 화제가 됐다.
단 두 차례 방송에 신청자가 4천명,주문매출액은 7백억원에 달했다.
고국을 등지겠다는 사람들이 봇물 터지듯 몰려나온 셈이니 '사회적 사건'이라고 부를 만하다.
사건이 터진 만큼 말도 많다.
"나도 지금부터 준비해야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나는가 하면 이민 성공률은 10%가 채 못된다며 부작용을 걱정하는 이들도 부쩍 늘었다.
국민을 나라 밖으로 떠밀어내는 현실을 개탄스러워하는 데는 너나 할 것 없다.
이런 반응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비즈니스와는 한참 거리가 있는 시각이다.
사실 '이민'이라는 단어만 빼놓고 생각하면 이건 엄청난 빅히트 상품이 새롭게 탄생한 '경제 사건'일 뿐이다.
경쟁사나 경쟁자라면 배가 아파야 정상이요,이 아이디어를 떠올리고도 상품화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땅을 치고 억울해해야 옳다.
실제로 홈쇼핑 경쟁사들엔 비상이 걸렸다.
직원들은 '현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획기적인 아이디어 상품을 당장 개발해 반격하라는 사장의 불호령에 머리를 싸매고들 있다.
여행업체,유학·이민알선업체,인터넷포털사이트 등 이민 관련 사업을 할 수 있었지만 선수를 뺏긴 업체들도 비상이 걸리기는 마찬가지다.
직·간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이런 업체들을 빼고는 그러나 이번 일을 경제적 의미로 해석하는 사람이 놀랄 만큼 적다.
이민 열풍을 걱정하는 사람은 많지만 "나도 한번 히트 상품을…" 하며 덤벼드는 이들이 별로 없는 걸 보니 비즈니스 마인드가 우리 사회에 퍼지려면 아직 먼 것 같다.
영리를 추구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면,자기 사업을 하고 있다면 돈을 벌 수 있고 사업 기회가 되는 이런 일에 민감해야 한다.
그래서 놓친 기회를 반성하고,자극 받아 전의를 불태워야 옳다.
그런 점에서 이번 일이 직장인들과 기업들에 희망의 메시지가 됐으면 한다.
90년대말부터 생긴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함께 사라진 '대박'의 꿈이 다시 살아났다는 가슴 뛰는 징표 말이다.
기적에 가까운 확률의 로또 1등이 아니어도,깡통을 찰지 모를 주식투자가 아니라도 막대한 수익을 단 한번에 일궈낼 수 있는 기회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사실이 이번에 확인된 것 아닌가.
단 한번에 '벌떡' 일어서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것,머리를 쓰고 매달리면 기회가 올 수도 있다는 것은 열정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보증수표 못지 않은 안전판이다.
사실 벤처붐 때의 거품 낀 유행에 비해 이번에 확인된 대박의 꿈은 질이 다르다.
가능성만이 담긴 비즈니스 모델로 사전 투자유치에 승부를 걸어야 하는 벤처에 비해 이번 것은 고객을 직접 상대해 그 잠재수요를 돈으로 확인한 정통적인 접근 방식이다.
지금의 시장에 만족하지 않는 고객집단을 찾아내 그들이 원하는 것을 채워주고 그 결과 전혀 다른 새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것이야말로 혁신 기업이 가야 할 길이다.
기업들엔 삼성 등이 강조하고 있는 인재경영(talent management)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워준 의미도 있다.
창의력이 풍부하고 아이디어가 넘치는 인재 한명이 1만명을 먹여살릴 수 있다는 말이 헛소리가 아님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이번 주문매출 7백억원은 현대홈쇼핑이 지난 상반기에 올린 매출 3천2백27억원의 20%가 넘는다.
우리 사회는 많은 이들이 떠나려고 하는 반면 이렇게 단 한번만에 '역전'을 일궈낼 수 있을 만큼 여전히 역동적이다.
이런 '대박'을 꿈꾸고,마침내 성취하는 사람들이 늘어야 한다.
그런 이들이 다름 아닌 혁신적인 기업가(entrepreneur)이기 때문이다.
전문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