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도·백도] 기·기·묘·묘…바위들의 가을풍류

"얼른 보지 않으면 금세 숨어버리는 수줍은 각시바위,자손 없는 여인 기원하면 소원 푼다는 서방바위,바다에서 천길 벼랑 기어오르는 지네바위,성모 마리아 바위,석불바위..." 변사톤으로 신명나게 이어지는 유람선의 안내방송은 백도의 기괴한 바위 모양과 어우러져 보는 이의 재미를 더한다. "남해의 금강산"이라 일컬어지는 백도.하늘로 치솟은 이 섬의 바위들은 가히 금강에 비견할 만한 풍광을 연출한다. 백도는 전남 여수시 거문도에서 동쪽으로 28 지점에 위치한 39개의 무인도군(群)이다. 백도의 명칭엔 전설이 따른다. 먼 옛날 옥황상제의 아들이 이곳에서 용왕의 딸과 어울려 풍류를 즐겼단다. 아들의 행동이 못마땅했던 옥황상제는 97명의 신하들을 차례로 보내 아들을 데려 오도록 했다. 그러나 신하들마저도 이곳의 풍경에 반해 돌아오지 않자 이윽고 자신의 아들과 용왕의 딸,그리고 신하들을 합쳐 모두 99명을 돌로 변하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 백도는 1백 백(百)자에서 한 일(一)자를 뺀 흰 백(白)자를 쓴다. 백도는 그 절경도 절경이지만 천연기념물인 흑비둘기,가마우지,동박새,휘파람새 등 30여 종의 조류와 땅채송화를 비롯한 해양식물 43종 등 희귀한 아열대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도 이름나 있다. 백도의 모섬격인 거문도는 우리에게 역사적인 '거문도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다. 1885년 영국 해군은 러시아의 남하를 막는다는 구실로 전략요충지인 이 섬에 진주,무려 23개월이나 이곳을 점령했다. 그래서 이 섬에는 아직도 영국군의 무덤이나 포진지 등 역사의 유적이 남아있다. 또 한일합방 후 일본이 항구를 장악하기 위해 만든 포진지와 벙커 등도 아직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거문도의 으뜸가는 경관은 서도의 정상격인 불탄봉에서 기와집몰랑(용마루)으로 이어지는 산길.동백나무 사이로 가꿔진 등산로를 따라 불탄봉 정상에 오르면 거기서부터 바다 절벽에 임한 평탄한 길이 열린다. 산 정상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산마루의 억새밭과 오른쪽 발 아래로 까마득하게 펼쳐진 푸른 바다 등과 어울려 어느 영화에서 보았음 직한 장면을 연출한다. 이밖에 국내 최초의 등대인 거문도 등대의 일출,귤은사당,거문도 뱃노래전수관 등도 둘러봐야 할 곳이다. 거문도=글 장유택 기자 chang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