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 '블랙먼데이'] 수출로 겨우 버텨온 경제에 '치명타'

이번에는 원화 환율 급락이 경제에 충격을 주고 있다. 취약해질대로 취약해진 한국 경제가 또 일격을 맞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 경제의 호전에 힘입어 늦어도 4분기중엔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라던 기대도 물거품이 될 공산이 커졌다. 투자와 소비가 꽁꽁 얼어붙은 상황에서 수출마저 활력을 잃을 경우 더이상의 돌파구를 찾기는 사실상 힘들다. 일각에서는 올해 2% 성장은 물론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내년 경제도 기약할 수 없다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 예상됐던 일이다 미국의 환율 압력은 이미 수차례 공언돼 왔다. 미국은 지난달 4일 한국 일본 대만 중국 4개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목한데 이어 지난 주말에는 'G7(선진 7개국)' 재무장관 회담을 통해 아시아 통화에 대한 절상론을 공식화했다. 더구나 부시 미국 행정부는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수출 확대 등 경기 부양을 위해 총력전을 펴고 있다. 원화환율 하락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기조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환율 하락이 한국 경제의 취약한 모습을 더욱 뚜렷하게 부각시킬 가능성이다. △국내 자금시장이 경색되고 △자산시장의 거품이 급격하게 빠지면서 △외국인 투자자금이 일거에 탈출하는 시나리오가 구체화될 수도 있다. 수출이 무너지고 경기는 회복은커녕 경착륙하게 된다. 환율 하락 기간과 양상, 하락폭 등 전개 양상에 따라 국내 경제는 또다시 위기국면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 위안화가 문제다 원화(貨)환율의 급락은 달러화에 연계(페그)해 환율을 고정시켜 놓고 있는 중국의 위안화에 비해 통화가치가 절상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 충격이 특히 심각하다. 전자 철강 석유화학 등 중국과 경쟁해 온 업종의 가격경쟁력이 약화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지금까지는 원화 가치가 일본 엔화와 동반해 움직일 경우 충격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러나 지금은 중국이 '세계의 생산공장'으로 떠오르면서 주요 해외시장에서 한국 기업들과 경합하고 있다. 환율의 급락은 고스란히 한국 상품의 대(對)중국 가격경쟁력 약화로 연결되는 구조다. 중국으로 수출하는 제품 가격이 오르는 것도 부담이다. 한국은 올들어 8월20일까지 중국에 1백97억달러어치를 수출, 전년대비 48.1%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이 기간중 한국기업들의 대미(對美) 수출증가율은 1.2%에 불과했다. 중국의 비중이 그만큼 커졌다. 중국시장에서 한국 제품이 밀릴 경우 수출은 한자릿수 증가로 둔화될 가능성이 높다. 수출은 올들어 지난 8월까지 전년동기 대비 16.3% 증가했다. 내수소비와 설비투자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상황에서도 국내 경제가 지난 상반기중 2%대 성장을 유지한 것은 그나마 수출이 버텨주었기 때문이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원화절상과 기업수익성' 보고서에서 "원화가치가 10% 상승하면 국내 제조업체들의 경상이익률은 평균 3%포인트 하락한다"고 밝혔다. ◆ 대책이 없다 원화환율 '하락속도'의 완급 조절이 시급하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장기적으로 환율 하락이 예고돼 왔긴 했지만 최근 하락폭이 너무 가파르다"며 "적절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심석하 한국경제개발원(KDI) 연구위원은 "환율변동 위험에 노출된 중소기업들의 타격이 특히 우려된다"고 말했다. 실효성 있는 대책이 없다는 점은 더욱 걱정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인위적인 경기 부양책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실제는 경기부양에 동원할 방법도 마땅찮다. 태풍 피해에 따른 3조원의 추경 편성이 발표됐지만 이 정도로 경기를 되돌려 놓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기업의욕을 북돋우고 고임금 등 고비용구조를 타파하는 원론적 대응이 필요하지만 정부는 아직 그럴 의사가 없는 것 같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