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申相民 칼럼] 외국자본 놀이터인가

미국계 투자은행이나 뮤추얼 펀드를 축으로 한 외국계 금융자본의 한국경제에 대한 영향력은 앞으로 얼마나 커질까. 2020년께는 한국경제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면 과연 잘못인가. 한국을 대표하는 양대 투신사를 한꺼번에 인수해 외환은행과 묶어 한국내에서 그룹을 형성하겠다는 텍사스 카우보이 집단 론스타의 저돌적 대시를 지켜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뉴 브리지 캐피털, 골드만 삭스,모건 스탠리,살로먼 브러더스,푸르덴셜,ING 베어링,소버린 등등,한국내에서 영역을 넓혀가려는 외국계 금융자본의 작전은 한마디로 현란하다. 이른바 글로벌경제시대인 만큼 외국자본을 백안시하는 전시대적 관념은 결코 적절치 않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대로 가도 별 문제가 없는지는 정말 의문이다. 외국인 투자자의 점유율이 38%나 돼 뉴욕증시에서 재채기만 해도 감기가 들게 돼있는 증시상황은 또 그렇다 치더라도, 국내 금융회사나 대기업이 통째로 외국인에게 계속 넘어갈 수밖에 없게 돼있다는 점은 정말 문제다. 그렇게 되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이 정부의 정책이라면 이 무슨 난센스인가. 앞으로 우리은행을 민영화한다고 치자. 살수 있는 곳이 어딜까. 외국계 투자은행이나 뮤추얼 펀드뿐이라고 단언하더라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국내대기업 집단은 은행주 보유한도(4%) 때문에만도 엄두조차 낼 형편이 아니다. 굳이 따진다면 국내에서는 신한은행이나 교보생명 정도가 입찰참여자격을 확보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조흥은행을 인수한 신한은행이 또 나서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 너무도 분명하다. 이래저래 따지면 공적자금 회수를 위한 정부보유 은행주 매각이 결국 어떤 모양새로 귀착될지는 점치기 어렵지 않다. 모든 전국규모 금융회사가 하나같이 외국인에게 넘어가는 날이 과연 오지 않다는고 단언할 수 있을까. 하이닉스 현대건설과 아직 정리되지 않은 구(舊) 대우 계열사 등을 인수할 수 있는 곳 역시 비슷한 얘기가 된다. 공정거래위가 신주처럼 여기는 출자한도가 국내기업들의 인수를 우선 가로막는다. 부실기업을 정리해야 할 당국자들이 이왕이면 외국인에게 팔려드는 것 또한 국내기업들엔 장애다. 국내기업에 넘길 경우 특혜시비에 말려들 우려가 결코 적지않기 때문에 덜 받더라도 외국인에게 넘기려는 성향을 띠게 된다는게 국내기업 관계자들의 일반적인 지적이다. 그 단적인 예가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과정이다. 경쟁상대였던 외국계 회사보다 훨씬 비싼 값을 써내고도 오랜 기간 우여곡절을 겪었던 까닭은 그렇게 밖에 달리 설명하기가 어렵다. 제일은행을 뉴 브리지 캐피털에 판 것과 똑같은 조건으로 내국인에게 넘겼다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해보면 특히 흥미롭다. 만약 그랬다면 특혜시비가 정치쟁점화하고 담당공무원은 그냥 있지 못했을게 불을 보듯 명확하다. 이런저런 까닭이 겹쳐 금융회사이건 기업이건 부실정리과정에서 외국계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게 현실이다. 대출액의 3분의 1 정도 가격으로 이른바 배드뱅크로 넘겨진 중규모 기업 정리과정도 바로 그런 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고도성장기에 부실기업정리는 한국기업들이 한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됐던게 분명한 사실이다. 죽은 것이 산 것을 배불리게 하는 것은 비단 동물의 세계에서만 빚어지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얘기가 전혀 달라졌다. 부실기업정리는 더이상 살아남은 기업들의 잔치가 아니다. 그것을 먹을 자는 따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파격적으로 싼 값으로 인수했기 때문에 그것을 무기로 숨만 붙어있는 경쟁상대를 몰아치지 않는다면 그나마 자비로운 일일지 모르겠다. 내국기업에 대한 역차별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내국기업의 발목을 잡아 안방을 외국인들에게 내주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기업정책에 대전환이 있어야 한다. 다른 어느 나라에도 없는 출자한도규제나 은행주 소유상한제 등은 글로벌시대에 걸맞게 하루빨리 없애야 한다. 소위 '검은 머리 외자'라는 해프닝이 빚어지는 것도 잘못된 기업정책과 꼭 무관하다고 하기 어렵다.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