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불임(不姙) 국가론 .. 정규재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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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과 대중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말이다.
단순히 여러 사람이 모인 것을 대중이라고 한다면 공중은 '합리적 개인들의 집합' 정도로 정의된다.
군중이라는 말도 있다.
대중에 충동성과 비합리성을 더하면 군중이 될 것이다.
정부가 북한산 관통로 문제를 놓고 '공론(公論)'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공론조사가 여론조사와 어떻게 같고 다른지 불분명하지만 굳이 정의한다면 '군중이 아닌 공중의 의견'을 듣겠다는 것으로 좋게 해석할 수도 있겠다.
문제는 지금 우리 사회에 공론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부터가 의문이고 허다한 여론의 조작이 횡행하는 상황에서 정부는 과연 무엇으로 공론의 잣대를 삼을지 두렵고 궁금하다.
정부가 고의로 혹은 무의식중에 공중과 군중을 오해하려 들거나 심지어 인위적으로 특정 우호세력들의 견해를 공론으로 간주하려 든다면 조사는 하나마나한 결과에 이를 것이 뻔하다.
일부 활동가들의 견해가 부풀려져 반영되거나 집단행위를 동반한 극단적 투쟁들이 공론을 압도하는 일이 자행된다면 공론의 이름을 빌린 '코드'의 조합에 불과할 것이다.
더구나 참여정부는 코드가 다른 여론과 보도에 대해서는 극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매우 특이한 의식구조를 갖고 있는 터다.
경제는 어설픈 반(反)기업주의로,노동은 친노(親勞)정책으로,심지어 문화예술계조차 특정 예술단체로 채워놓는 식이라면 공론의 설 자리는 처음부터 없다.
질문을 던지는 방법도 문제다.
예를 들어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가"라는 문항처럼 질문 자체에 답이 들어있는 규범적 질문을 던져놓고 그것으로 정책의 근거로 삼는 것은 바보짓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더구나 산술 평균을 지향하는 여론조사에 내던질 수 없는 사안 또한 적지 않다.
강남 투기를 촉발시켰던 일산 분당 등의 고교평준화 정책이 그런 경우다.
학업성적이 특별히 우수한 자녀를 둔 부모가 아니라면 평준화에 찬성표를 던지게 마련이지만 이들의 찬성표는 시험으로 들어갈 수 없는 특정 학교에 시험 대신 '뺑뺑이'로나마 자녀를 입학시키는 기회를 얻어보자는 역선택에 불과한 경우도 많다.
이런 역선택이 횡행하게 되면 조사는 무용지물이 되고 그 피해는 찬성표를 던진 당사자들에게 돌아간다.
경제와 기업에 대한 질문들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투명한 기업경영을 원하십니까'라는 규범적 질문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것이 가져올 경영간섭과 행정규제와 기업가 정신의 위축,다시 말해 경제 동력의 소멸에 대해서 말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서민을 위하며 영세 상인을 위한다는 명제들도 비슷한 처지다.
영세 상인을 위해 만들어진 임대차 보호법이 결국은 영세 상인을 죽이고 있는 것에 대해 이 법을 만들었던 사람들은 다만 침묵을 지킬 뿐이다.
위도 방폐장 건설 문제도 그렇게 될 것이고 북한산 터널도 다를 바가 없다.
그렇게 해서 결국에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나라,즉 불임(不姙)국가가 되고 만다.
물론 정부를 비난할 일만은 아닐 것이다.
내 집에 가깝다면 '사스병원'조차 들어와서는 안되는 비열한 이기주의자들의 나라가 한국이다.
이제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판교 학원타운 문제가 다음 토론순서를 기다리고 있다지만 '정부가 사설 학원을 조장해도 되느냐'는 모범답안 한마디면 결론은 정해진다.
전문가들의 공론은 싫다 하고 비전문가 대중과 아마추어 도덕가들과 인터넷을 떠도는 군중을 여론으로 삼는다면 국정의 결과는 뻔하다.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