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이기주의국가 汚名을 벗자..金榮奉 <중앙대교수·경제학>

지난달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는 농민대표 이경해씨의 할복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세계가 주목한 이 회의에서 한국은 선진 농산물 수입국의 편에 서서 시장개방 반대시위를 격하게 이끌었고,동시에 개도국이 받는 농업보호 장벽을 요구했다. 회의 결렬 후 뉴욕 타임스는 '가난을 수확한다(Harvesting Poverty)'는 사설(9월 16일자)을 실어 부유한 농산물 수입국들이 회의를 망치고 얻은 이익을 비꼬았다. -칸쿤의 주의제는 농업분야 시장개방을 촉진해 공산품 수출국들이 누리는 자유무역시장의 이익을 가난한 농산물 수출국에도 확대시켜 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선진국 대표들이 WTO가 주체하지도 못할 관리 영역의 확장문제를 등장시켜 회의 실패를 이끌고 개도국의 제안을 봉쇄했다. 반(反)세계화 투쟁집단이 지각없이 환호한 칸쿤 실패로 가장 고통받을 자는 세계의 가난한 국가들이다.- "이 실패의 주 설계자가 세계무역 증가로 얻는 번영의 광고판 자체인 일본 한국 EU라는 사실은 쓰라린 아이러니(bitter irony)"라고 뉴욕 타임스는 기록했다. 자해사건의 후유증과 회의 무산으로 얻은 이익에나 매달린 우리는 세계가 보내는 조롱 찬 시선을 느끼지도 못했다. 세계에서 한국 만큼 자유무역체제의 수혜를 입은 나라도 찾기 어렵다. 덕분에 오늘날 무역규모는 연 3천억달러를 넘었고 OECD 부유국가 클럽에도 끼게 됐다. 그러니 국제사회에 한 몫 기여하는 신사는 못 될 망정 몰골 사나운 행색은 보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농산물 수입을 막겠다고 개도국 지위를 주장하는 모양새는 호텔에서 비싼 식사를 즐기며 극빈자 생계비를 타먹겠다는 몰염치한처럼 보인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절대 화두는 이라크 파병문제이다. 우리 언론은 이라크에서 미군이 어떻게 공격받고,사상자가 나고 이라크 국민이 저항하는가를 집중 조명한다. 부시가 만든 이 수렁에 왜 미군의 총알받이가 될 군대를 보내려 하느냐고 파병 반대집단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이 것이 이라크 실상의 전부인가. 이라크는 지금 사재를 78억달러나 축적했다는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축출하고 새로 민주시대로 태어나는 산고를 겪고 있다. 그가 저지른 기아 고문 살생 공포의 증거는 어디에서나 발견되고 있다. 일례로 57개의 집단 매장지가 발견됐는데 한 곳에서는 1천2백명의 어린이가 묻혀 있었다고 한다. 이라크는 지금 수천개의 학교 병원 축구장이 수선 및 신설되고 새 질서가 뿌리내리는 과정이다. 이미 6천여개의 지방행정 단위와 새 재판소가 설치됐다고 한다. 국민의 70%를 차지하는 시아(Shia)파와 쿠르드(Kurd)족은 쌍수로 이 변화를 환영한다. 그러나 바트(Baat)당의 잔재 세력은 극력 저항한다. 지금 이 시점에 외국 병력이 떠난다면 이라크가 걷잡을 수 없는 혼돈에 빠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최근 미국의 미디어도 "모든 총격은 샅샅이 기록하고 모든 좋은 것은 전부 무시하는" 이른바 경찰 사건기록식 보도 접근(police-blotter approach)을 반성하기 시작했다. 과거 세 차례 퓰리처상을 받은 바 있는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EU가 프랑스에 잘못 인도돼 '근대 중동역사의 가장 중요한 정치발전 사업'에서 스스로를 지워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라고 뉴욕 타임스(9월 18일자)에 썼다. 국제사회의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도 북한 인민의 처지가 됐을 것이다. 이제 민주정부와 선진경제를 일군 한국이 줏대를 세워 중동의 대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당당하지 못한 일인가? 현 정부나 이념집단은 국내에서 보는 이념의 잣대로 세상을 본다. 국내의 갈등을 안에서 풀지 못하고 국제사회에 나가 집단 이기주의의 떼쓰는 행색을 굳이 보인다. 이런 철없는 행태가 계속되는 한 우리는 국제사회의 변방을 벗어날 수 없다. kimyb@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