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부패지수

구한말 이 땅을 밟았던 외국인들은 조선이 망한 이유를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은 목소리로 설명하고 있다. 독일인 오페르트는 '조선기행'에서 "관리들은 세금을 쥐어 짜기에 급급하고 자신의 배를 채우기에 여념이 없다"고 썼다. 영국인 이사벨라 버드 비솝은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이란 책에서 "관아안에는 한국의 생명력을 빨아먹는 기생충들이 우글거린다"고 거침없이 혹평했다. 미국의 사회소설가인 잭 런던 역시 "수세기에 걸친 집권층의 부정부패로 인해 한국인은 용맹성을 잃었다"는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1백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도 이같은 부정부패는 여전히 심각한 사회문제이며,국가경쟁력을 좀먹는 암적인 요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얽히고 설킨 부정부패의 사슬이 좀처럼 끊기지 않고 있는 것이다. SK분식회계 현대비자금 굿모닝게이트 등 대형 부정사건과 스캔들이 온 나라를 소용돌이로 몰아넣는 것만 봐도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알만하다. 부패감시 국제민간단체인 국제투명성기구(TI)가 엊그제 발표한 부패인지지수(CPI)가 이를 확인해 주는 듯한데,한국은 세계 1백33개 국가중 50위에 랭크됐다. 지난해보다 무려 10단계나 추락한 것이다. 참여정부가 주창하는 선진국수준의 청렴국가 실현이 무색할 지경이어서 국가차원의 획기적인 조치가 없는 한 앞으로도 개선될 기미는 별로 없을 것 같다. 4년 연속 1위를 고수하고 있는 핀란드가 부러울 뿐인데 정치자금의 투명성과 공직자의 명예,행정절차의 공개,지속적인 부패감시체제 등이 부패없는 나라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핀란드에는 "공무원들에게 따뜻한 맥주와 차가운 샌드위치는 괜찮지만 그 반대는 위험하다"고 할 정도로 뇌물을 터부시하는 풍조가 당연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부패인지지수와 맥이 통하는 것이지만 국제적 기업인을 대상으로 한 뇌물관행지수에서도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울 만큼 형편없이 낮은 수준이다. 우리의 치부가 외국인들 눈에 여과없이 비쳐지는 것 같아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