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세대주택 경매 급증] 무더기 건축허가…빈집ㆍ빚 '눈덩이'

경매에 넘어가는 다세대주택이 급증하는 것은 계속되는 경기침체 여파로 집주인들이 주택을 담보로 빌린 대출금을 제 때 갚지 못하고 있는게 직접적 원인이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경기부양을 명분으로 규제완화를 남발하며 다세대주택의 공급과잉을 방치한게 더 큰 문제로 꼽히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정부가 규제를 완화한답시고 다가구주택을 무차별적으로 다세대로 전환해 준 데다 주택공급 확대의 수단으로 다세대주택의 난립을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공급과잉 촉발시킨 무더기 규제완화 외환위기 직후인 지난 98년 이후 정부는 경기를 부양한다며 '건설경기 활성화'와 함께 '규제 50% 줄이기'에 나섰다. 다세대주택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조권 제한이 폐지됐고, 주택과 주택 사이를 일정거리 이상 띄워 지어야 하는 공지(空地)규제도 풀렸다. 건축허가 대상이나 피난 및 안전규정이 완화되고 다가구주택을 다세대주택으로 전환할 수 있게 한 것도 이 때다. 더욱이 50% 미만에 머물던 주택담보 대출한도를 80∼90%까지 올리자 저금리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던 여유자금이 임대수익을 올리기 위해 다세대주택으로 대거 몰려들었다. 이로 인해 지난 2000년부터 서울 인천 등 수도권 단독주택 밀집지역마다 다세대주택 신축 붐이 일었고, 건축업자들은 주택을 담보로 금융권에서 빌린 돈(건설자금대출)을 입주자들에게 떠넘기거나 중도금(주택구입자금) 대출을 알선하는 조건으로 분양에 나섰다. 실제로 지난 1∼2년간 수도권에서는 '실입주금 OOO만원-파격분양' 등의 글귀를 담은 분양 플래카드나 애드벌룬, 전단 등이 주택가마다 10여개씩 내걸릴 정도였다. 지자체 늑장행정도 한 몫 설상가상으로 서울시 등 지자체들의 '뒷북 대책'은 다세대주택 공급과잉을 더욱 부채질했다. 규제완화를 틈타 다세대ㆍ다가구주택이 급증해 주차난이 심화되자 서울시 등 지자체들은 지난 2001년부터 일제히 주차장 설치기준 강화 방침을 발표하고 나섰다. 하지만 강화된 기준이 실제 시행되기까지 1년 안팎의 기간이 걸리면서 규제강화 전에 건축허가를 받으려는 물량이 대거 몰려 공급이 더욱 늘었다. 이로 인해 지난 99년 1만7천9백여가구, 2000년 5만6천여가구에 불과하던 다세대주택 건설은 2001년 20만4천여가구, 2002년 22만여가구가 신축됐다. 특히 수도권의 경우 2001년부터 2년 만에 무려 33만여가구가 지어질 만큼 공급이 폭증했다. 경매물건 대부분이 새 집 최근 경매에 나온 다세대주택 대부분이 지은 지 1∼2년밖에 안된 새 집으로 파악되고 있다. 경제력이 취약한 서민들이 건축주가 금융권에서 담보비율 상한선까지 빌린 대출금을 떠안고 입주했지만 경기침체가 계속되자 이를 갚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경매에 넘겨진 다세대주택중 국민은행의 신청 물량이 급증하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인천과 부천의 경우 국민은행이 경매를 신청한 다세대주택이 지난 7월 3백12건에서 9월에는 1천5백22건으로 늘었고, 다세대주택 경매물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연초보다 10∼20% 높아진 75%선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주택자금 대출비중이 다른 시중은행보다 상대적으로 큰 데다 주택은행과 통폐합 후 시행 중인 부실채권 조기 정리방침이 맞물리면서 경매신청 건수가 크게 증가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세입자 피해가 더 문제 다세대주택 경매물건이 급증할 경우 경제적 약자인 세입자들에게 가장 큰 피해가 돌아간다는 점에서 자칫 사회문제화할 우려를 낳고 있다. 금융권에서 집을 담보로 돈을 빌린 다세대주택에 뒤늦게 세를 들어갔다가 경매에 넘어가면 전세금조차 돌려받지 못한 채 거리로 나앉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80∼90년대 다세대주택 건축붐이 일었을 때는 물론 외환위기 이후 최근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현상이다. 소비자들이 다세대주택을 기피하는 것도 상대적으로 열악한 주거환경 외에 이 같은 이유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따라서 세입자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대책 마련에 정부가 서둘러 나서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강황식 기자 his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