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재신임 파문] 경영 불확실성 고조, 기업들 "못살겠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재신임 정국은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 경제에 또 하나의 '악재 보따리'가 될 것이다." 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소장의 얘기다. 노 대통령의 재신임 발언-국무위원 일괄사표-사표 반려-재신임 국민투표 방식 유력 등의 충격적인 소식들이 잇따르면서 기업들의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내수는 소비 위축에,수출은 환율 및 유가 불안에 각각 발목이 잡혀있는 상황에서 경영환경을 가늠하는 최대 변수인 정국이 요동을 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한 대기업 기획실 관계자는 "단순히 가격변수가 문제라면 예년처럼 '시나리오 경영'으로 대응하면 되겠지만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정국 자체가 혼미해지면 달리 방법이 없다"고 푸념했다. 정치가 또 다시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기업은 심리적 공황상태 10월은 주요 기업들이 내년도 사업계획 초안을 작성하는 달. 굵직한 투자 현안들에 대한 선을 긋고 매출과 경상이익을 비롯한 주요 재무계획도 만든다. 하지만 요즘 기업 관계자들은 "앞날이 보여야 계획을 짤 것 아니냐"며 하소연하고 있다. 국정 불안에 따른 경제적 부작용을 우려해 지난 10일 노 대통령의 재신임 결정이 철회돼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던 삼성그룹 관계자는 "국민투표 방식으로 진행될 경우 정치권이 사활을 건 투쟁을 벌이고 사회 전체는 소모적인 논쟁에 휩싸일 것"이라고 걱정했다. 올들어 극심한 노사분규를 겪었던 현대차나 두산중공업 측도 사실상 노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국면이 일찌감치 노동계의 동투(冬鬪)로 연결되는 것 아니냐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재신임 파문의 단초를 제공한 것으로 눈총을 받고 있는 SK 역시 그룹을 제대로 이끌어갈 수 있을지 초조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한 기업 관계자는 "주요 기업들을 중심으로 투자 동결 내지는 축소 사태가 속출할 경우 청년층 실업난과 내수기반 붕괴도 가속화할 것"이라며 우려했다. ◆경제정책 안먹힌다 노 대통령 집권 이후 국정현안으로 떠오른 사안들은 대부분 경제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신용불량자 처리나 부동산 가격안정 대책,자유무역협정(FTA)비준 등에서 이라크 파병과 북한 핵문제에 이르기까지 기업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사안은 거의 없다. 재계는 이같은 사안들이 재신임 정국을 맞아 경제논리보다는 정치논리로 다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측면에서 심각한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여권이 재신임을 위한 국민투표에서 승리하기 위해 인기 영합적인 정책을 들고 나올 가능성에 대한 경계심도 높아지고 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정부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게 높아져 기본적으로 경제정책의 '약발'이 먹히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며 "경제에 주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제발 빨리 마무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일훈·장경영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