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해냈다] 대한교과서 김광수 회장 (1) 한보도시가스 인수

지난 1일. 대한교과서 김광수 회장(78)은 벅찬 감격을 가슴에 담고 깊은 상념에 빠졌다. 한보도시가스 인수 계약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담당 임원의 보고를 받은 그는 7층 회장실에서 창 밖을 물끄러미 내려다 봤다. 사장 회장으로 경영해 온 지난 42년은 격동기의 한국 현대사 만큼이나 우여곡절이 많았다. 한국전쟁중의 어려웠던 교과서 발행,회사 운영자금이 부족해 은행 문앞에서 가슴 졸이던 일이 엊그제같다. 하지만 이제 김 회장은 서울 강남에 번듯한 사옥을 갖고 있는 매출액 1천6백억원의 중견기업 회장이 됐다. 비록 일반에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급여도 업계에서 가장 많이 주고,주주들에게는 20%의 배당을 할 만큼 회사를 내실 있게 만들었다. 한보도시가스는 한보에너지의 알짜 사업이다. 충남 서북부지역의 공단과 가정에 가스를 공급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2백67억원으로 앞으로 공단이 추가되면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성장 가치가 있고 사업 특성상 현금흐름이 좋아 여러 기업들이 눈독을 들였다. 그러나 대한교과서가 낙찰자로 확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관련업계는 적지 않게 놀랐다고 한다. 사실 그럴 만도 했다. 대한교과서는 중·고교 교과서를 오랫동안 독점 공급해왔다. 정부의 간섭이 많았지만 사업은 안정적이어서 순수 민간기업으로서 공기업적 성격이 강해 인수 경쟁 상대로는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대한교과서는 언젠가는 경쟁 시장으로 나가야 한다고 보고 이미 오래 전부터 변신을 거듭하고 있었다. 내부에 경쟁체제를 도입하고 권한을 하부에 대거 위임하는 등 조직을 탄력적으로 만들어 나갔다. 신규 사업도 꾸준히 검토해 82년에는 전북도시가스를 설립,도시가스 사업에 첫 발을 내디뎠고 99년에는 부실 국정교과서를 인수해 흑자로 전환시켰다. "사업은 가치가 있으면 남보다 더 많은 돈을 주고 사는 게 당연하다고 봅니다.바로 장사와 다른 점이죠." 김 회장은 한보도시가스 입찰때도 실무자에게 예상가격보다 최고 50억원의 재량권을 추가로 부여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 3백41억5천만원에 낙찰됐는데, 인수 직후 경쟁기업으로부터 돈을 얹어 줄테니 되팔라는 제안도 들어왔다고 한다. 물론 김 회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제안이라며 거절했다. "장치사업은 안정성이 뛰어납니다.10년 정도의 고생은 기본이라고 보아야지요.5년간 적자내고 10년 안에 흑자를 낼 수 있으면 아주 좋은 사업입니다." 김 회장은 안정적 사업을 선호하는 스타일이다. 공익·문화사업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생각에서라고 한다. 김 회장이 공익·문화사업을 추구하는 데는 지난 55년간의 회사 역사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최규술 기자 kyus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