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4일 개봉 '굿바이 레닌'..엄마 구하기 지상최대 거짓말 작전

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로 촉발된 독일의 통일은 '자본주의의 탐욕이 사회주의의 이상을 삼켜버린 역사'라는 주장이 있다. 다분히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주장이지만 적어도 코미디영화 '굿바이 레닌'(감독 볼프강 베커)은 이런 시각에서 출발한다. 독일 통일은 자본주의의 위대한 승리였지만 동독인들의 꿈을 앗아간 사건이기도 했다. 이 영화는 승자의 역사에 파묻혀 버린 패자들의 꿈을 비탄에 잠긴 정치적 회고담이 아니라 유머러스한 가족 이야기로 들려준다. 독일에서 역대 흥행 2위인 6백25만명을 동원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직전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가 8개월 뒤 의식을 되찾은 어머니가 격변의 시대상에 충격받지 않도록 아들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 영화의 줄거리.어머니는 동독인들이 추구해 왔던 사회주의의 이상과 격변의 시대상을 거부하는 마음을 상징한다. 어머니는 열혈 사회주의자로 묘사되며 동독이 서독으로의 흡수통합을 공식 발표한 이틀 뒤 아무 것도 모른 채 평온하게 숨진다. 아들이 언젠가 거짓말을 자백할 것이라는 관객들의 기대는 기분좋게 배반당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쓰라린 진실로 아픔을 주기보다 선의의 거짓말로라도 희망을 주는 게 더 낫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아들이 거짓말을 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조금도 받지 않는 게 반증이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아들에게 유태인수용소의 참상을 알려주지 않고 거짓행동으로 희망을 불어 넣었던 아버지의 사랑과 다름없다. 독일 통일 후 동독인들은 대부분 낙오자로 묘사된다. 학교장은 은퇴 후 술자리를 전전하고 동독 최초의 우주비행사는 택시운전사로 일한다. 그러나 어머니가 좋아했던 동독시절의 피클을 얻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고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인 콜라가 동독의 발명품이며 서독 난민이 장벽을 넘어와 서독이 동독에 흡수합병됐다는 가짜 방송뉴스까지 제작하는 아들의 눈물겨운 효도에 관객들은 웃을 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추억을 파는 또 하나의 자본주의 상품으로 비난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약자들의 아픔을 짚어냄으로써 기관차처럼 질주해 온 자본주의 역사를 돌이켜보게 한다. 영화 속 대사처럼 '통일 독일의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희망적'이라는 메시지도 담겨 있다. 24일 개봉,12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