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생산성-'도요타에서' 배운다] (5) '이데시타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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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자위해 거듭난 이데시타병원 ]
지난 4일 오후 일본 히로시마의 이데시타클리닉.
오전 진료만 하는 토요일인데도 주사실 수혈실 심전도실 등이 있는 2층 사무실에선 간호사 7명이 회의를 하고 있었다.
"개인용무로 자리를 비울 때는 옆사람에게 인수인계를 제대로 해야 합니다."(가지 계장)
"잠시라도 자리를 뜰 때는 동료에게 돌아오는 시간을 정확히 말해줍시다."(마쓰다 간호사)
오고가는 이야기로 보아 회의주제는 간호사간 업무 인수인계에 대한 것 같았다.
그게 과연 토요일 오후까지 남아 토론을 해야할 정도로 중요한 사안인지 의아했지만 간호사들의 표정은 아주 진지했다.
이데시타 병원에서는 일주일에 두차례, 목요일과 토요일에는 부서별로 모여 이런 업무회의를 갖는다.
업무수행 과정에서 빚어질 수 있는 문제를 상정한 뒤 구성원들간 토론을 통해 미리 해결 방안을 마련해 두기 위한 회의다.
◆ 토론과 제안으로 문제 찾고 푼다
부서별 업무회의가 열리는 목요일과 토요일에는 운전기사들까지도 따로 모여 회의를 한다.
실제로 1층 대기실에서는 대여섯명의 운전기사들이 손에 메모지를 들고 안전사고 방지, 주유카드 분실시의 책임소재, 경비청구 문제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다.
"별것 아닌 것도 같이 모여 토론하고 대안을 찾다보면 개선방안이 보여요. 때문에 누구도 불평을 하지 않습니다."(기사실 후지오 주임)
이데시타병원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하루에 적어도 한개의 낭비 요인을 찾아내 개선책을 제시해야 한다.
매일 아침 조회시간에는 5명씩 선정해 문제 발굴 발표회를 갖는다.
"흔히들 회의가 많은 회사치고 잘되는 회사가 없다고 합니다. 물론 맞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회의 횟수가 아니라 내용과 방식입니다. 우리 병원에서는 회의를 통해 구성원들이 함께 낭비 요인과 개선방안을 찾고 있어요."(이데시타 미유키 전무)
이데시타병원에서는 회의가 거의 일상화되다시피 했다.
6개월에 한번은 전체 종업원이 참석하는 회의가 열린다.
이데시타병원은 이런 과정을 통해 지난 1년 동안 2천개 이상의 문제점을 발견해 개선했다.
◆ 개선 활동이 강한 시스템을 구축
문제를 찾은 후에는 개선활동을 통해 병원 시스템을 바꿔 나갔다.
무엇보다 환자를 특성별로 분류했다.
예를 들어 예약을 한 환자와 예약하지 않은 환자를 나눴다.
의사도 예약 환자 혹은 비예약 환자를 전담토록 업무를 조정했다.
환자가 이유 없이 대기해야 하는 이른바 '정체'를 줄이기 위해서다.
그 전에는 예약 여부에 관계없이 한 의사가 줄을 선 환자를 순서대로 진료했다고 한다.
환자의 특성에 따라 진료와 치료를 하면 환자가 몰리는 현상을 막을 수 있다.
의사 한 명당 업무량을 평준화할 수 있는 효과까지 거둘 수 있다.
단순히 진찰만 하는 환자와 주사ㆍ물리치료 까지 받아야 하는 환자도 구별해서 접수를 받는다.
원활한 업무 흐름을 위해 초기 단계에서 환자의 특성을 규정하는 것이다.
주사실에 환자들이 한꺼번에 몰리지 않도록 진료와 처방단계의 속도를 적절히 조절한다.
후속 공정을 고려해 작업을 진행하는 도요타식 간방 방식과 비슷한 원리를 병원에 적용한 것이다.
의료 행위 이외에 쓸데없이 들어가는 시간은 무조건 없애는 쪽으로 해법을 찾았다.
특히 환자들이 기다린다는 느낌을 갖지 않도록 접수 창구에 상담 전임 한명을 배치했다.
환자에게 '보이는 시스템'으로 대응하는 방안도 나왔다.
접수 번호만 알면 환자 스스로 대기 상황은 물론 처방전 수령, 수납 등에 이르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시간을 파악할 수 있게 했다.
◆ 도요타 방식의 성공여부는 사람에 달렸다
이데시타클리닉에서 도요타 방식을 도입해 거둔 성과중 하나는 어떤 일을 하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 지를 직원 모두가 알게 됐다는 점이다.
이 병원이 환자(고객)들에게 왜 기다려야 하는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도요타 방식은 사람을 가장 중시한다.
이데시타 원장이 작년 7월 도요타 방식을 병원에 도입키로 결심한 것도 도요타 사장을 지냈던 와가마쓰 요시히도씨의 강연을 듣고 난 직후였다.
와가마쓰씨는 "사람에게 내재한 무한 능력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도록 적절한 환경을 조성하는데 도요타 생산방식이 매력이 있다"고 강조했다고 이데시타 원장은 전한다.
변화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병원 직원들이 반발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도요타 방식으로 낭비 요소를 없애면 결국 직원의 업무가 줄어 자신들도 혜택을 본다는 사실이 입증된 뒤에는 불평하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시간 외 근무가 없어지는 등 근무 조건이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업무 효율이 높아져 전에 10명이 하던 일을 지금은 7명이 하고 있다.
그렇다고 인력을 줄이지는 않았다.
유휴 인력을 서비스 접점에 배치했다.
당연히 환자들에 대한 서비스 질이 높아졌다.
일부 직원은 갑자기 병원 발길을 끊은 단골 고객에 전화로 안부를 물을 정도가 됐다.
"차별화된 서비스로 환자들이 늘어나면 병원은 더 많은 수익을 올리게 되고 그에 따라 직원들에게 돌아가는 복지 혜택도 더 많아지게 되는 것 아닙니까."
이데시타 원장은 도요타 방식의 도입으로 고객만족과 직원만족을 동시에 이루었다고 강조했다.
히로시마=이익원 기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