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화장하는 남자

화장(化粧)의 역사는 길다. 중국에선 하(夏)나라 우왕 때 분(粉)을 만들고,로마에선 당나귀젖으로 크림을 제조했다고 한다. 중국에선 특히 흰 피부를 원한 듯 사극을 보면 귀족남성들이 백분을 하얗게 바르고 눈썹과 입술을 그린 경극배우같은 얼굴을 하고 있거나 백분 때문에 퍼래진 살색을 감추려 애쓰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 역시 하멜이 '조선 사람들은 서양인의 얼굴색을 몹시 선망한다'고 써놓은 데서 보듯 피부가 희어야 귀인상(貴人相)으로 쳤다. 그래도 남자는 우락부락하고 거무튀튀해도 괜찮게 여겨지던 것과 달리 요즘엔 곱상하고 깨끗한 외모가 인기를 끌면서 남자도 얼굴에 신경쓴다. 특히 '사오정 오륙도'라는 말이 떠돌면서 나이든 남성들은 젊어 보이려 애쓴다. 머리 염색은 기본이고 피부과에 가서 점과 검버섯을 빼고 쥐젖을 없애고 주름을 없애려 보톡스주사도 맞는다. 남성 전용 피부관리업소가 생겼는가 하면 화장품도 스킨로션이나 셰이빙로션 밀크로션 정도에서 컬러로션이라는 이름의 파운데이션까지 나왔다. 여성만 화장품으로 잡티나 점을 가리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남성도 메이크업베이스나 파운데이션 파우더 등을 사용해 맨 얼굴보다 뽀얘진 얼굴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고도 한다. 남자의 화장에 대한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이상하다" "속이 메슥거린다"는 사람도 있지만 "필요하다면 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치장이 아니라 결점 보완인 만큼 백안시할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화장품 회사가 '남자의 화장'을 주제로 연 사이버토론회에서는 찬성이 많았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한국에서 화장하는 남자들이 늘어난다고 보도했다는 소식이다. 컬러로션의 주고객이 중년 직장인이며 이는 경쟁사회에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일로 보인다고 전했다는 것이다. 깨끗하고 단정하게 보이려는 걸 탓할 수는 없겠지만 '살아남기 위해'라고 알려지는 건 씁쓸하다. 프랑스의 상징인 마리안이 미녀스타 대신 평범한 외모의 30대 후반 TV토크쇼 진행자로 선정됐다는 뉴스가 나오는 마당에 말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