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주말 즐기기..마르코스 고메즈 <주한유럽상공회의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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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os.gomez.mg@bayer.co.kr
나처럼 외국에 사는 사람들에게 주말이나 휴일이 오면 뭘 할지 정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주로 친구들과 유적지를 방문하거나 골프를 즐기며 시간을 보내는데,이렇게 한 두 해를 지내다 보면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내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거의 없게 된다.
건축가인 아내에게는 그림 그리기라는 오래된 취미가 있다.
30여년 전 독일과 스페인의 학교에서 그림을 배우는 동안 독일의 우리집은 온통 그녀의 열정이 담겨 있는 그림으로 장식됐다.
내 사무실에도 그녀의 그림 한 폭이 나와 함께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따금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그 그림의 작가를 아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한껏 얼굴을 찌푸리고 미술에 대한 무지를 털어놓곤 해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는 경우가 있다.
아내는 서울에 오자 바로 한국의 동양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차고를 작업장으로 바꾸고 다른 친구들과 함께 저명한 한국인 화가를 초빙,동양화의 기초와 문학적인 회화(Literary Painting)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다.
내가 듣기로는 중국에서 유래됐다는 매화 국화 대나무 난초,즉 사군자가 그들 그림의 주제가 됐다.
중국의 유명한 화가인 왕유는 이런 문학적인 회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유했다고 한다.
"그림에는 시가 있고,시에는 그림이 있다."
유럽에서 유화를 오래도록 그린 아내는 여백이 많고 색감이 많이 들어가지 않는 한국의 그림을 배우는 것은 아주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우선은 동양화를 위한 붓 사용 자체가 매우 어려웠다.
아내는 지금도 붓을 잡기 전 숨을 고르곤 한다.
그 다음 과제는 붓에 적지도 많지도 않은 먹을 더해 그림을 그리되 여백을 너무 많게도,너무 적게도 만들지 말아야 하며 소나무를 고슴도치처럼 뾰족하게만 그리지도 말아야 한다.
아내는 무채색으로 화선지에 표현된 동양화의 주제들이 큰 힘과 움직임을 보여줄 때는 그 예술성에 감탄을 연발하곤 하는데,그것이 바로 한국예술이 가지고 있는 신비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번 주말도 아내는 다음 작품을 위해 나와 함께 서울 근교의 이곳저곳을 돌아볼 생각이다.
덕분에 요즘 내 주말의 주제는 온통 '동양화'가 돼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