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지역전문가 보고서 눈에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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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중국인들은 빨간 팬티를 바깥에 널어놓고 말릴까'(송대석 삼성아토피나 특수영업팀 과장) '구 소련 비밀경찰(KGB)요원들이 사용했던 술깨는 약'(고종우 삼성전자 메모리IP그룹 과장)
세계 각지에 나가있는 삼성그룹의 '지역 전문가'들이 최근 사내 인터넷에 올린 '보고서'의 제목들이다.
'글로벌 인재 양성을 위해 비싼 돈 들여 해외에 내보낸 직원들이 이렇게 엉뚱한 글이나 쓰나'하고 의아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분기별로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지역 전문가들에게 활동 영역이나 주제의 제약은 없다.
물론 비즈니스와 관련된 정보라면 좋겠지만 기본적으로 해당지역 생활문화와 관습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준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삼성은 지난 90년 1년짜리 지역전문가 제도를 도입한 이후 2천3백여명의 전문가들을 배출해냈다.
그동안 올라온 보고서는 줄잡아 8만여건.
이 가운데 사내 인트라넷에만 4만8천여건의 보고서가 올려져 있다.
그룹 임직원이라면 누구든 관심있는 지역을 클릭해 살펴볼 수 있다.
지난 95년 지역 전문가로 1년간 일본을 다녀왔던 삼성그룹 홍보팀의 김준식 상무보는 "아무리 사소한 정보라도 수천건,수만건이 모이면 해당 지역에 대한 훌륭한 데이터베이스가 된다"며 "불확실한 첩보가 모여 정보가 되듯 인트라넷에 잘 분류된 보고서를 읽어보면 어느 책에도 나와 있지 않은 해당국가의 정보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해외 주재원으로 발령나거나 출장을 가게 될 경우 이 보고서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비즈니스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삼성은 내년에 내보낼 지역전문가를 올해보다 25% 많은 2백50명선으로 책정했다.
삼성은 특히 이번에 젊은 직원들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 선발 요건을 종전 대리∼과장급에서 입사 3년차 사원 이상으로 확대했다.
기동력과 패기를 갖춘 젊은 직원들이 보다 왕성한 활동을 펼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최대 전략지역인 중국에 50%의 인력이 배정되고 인도 러시아 베트남에 30%,나머지 지역에 20%의 인력이 각각 파견된다.
홍콩이나 광둥성 등의 중국인들이 속옷 빨래를 밖에 내거는 이유에 대해 송 과장은 "특유의 개방성에다 서민 주택들의 경우 좁은 공간에 빨래를 말릴 수 있는 공간이 없기 때문"이라고 나름대로 분석했다.
특히 붉은색은 중국인들에게 발전과 행운을 의미하는 색깔이기 때문에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고 송 과장은 설명했다.
KGB 요원들이 애용했던 술깨는 약은 러시아 최고의 연구기관인 과학아카데미가 개발한 '안티빠흐멜린'이라는 제품으로 지난 2001년 러시아에서 최고의 생물학 제품으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우리 돈으로 1천2백원 정도인 이 약을 한국 관광객들도 많이 사간다고 필자는 설명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