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의 '월요경제'] 브레이크없는 '수사경제'

낙엽이 수북이 쌓였다. 낙엽지는 모습에서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나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로 끝 맺는 레미 드 구르몽의 '낙엽'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요즘엔 러시아 가수 요시프 코브존의 '백학'이 낮게 깔리는 '모래시계'의 장면이 더해졌다. 낙엽만큼 시인들의 시심(詩心)을 자극한 말도 드물다. 김광균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추일서정')라고 했고 유치환은 "너의 추억을 나는 이렇게 쓸고 있다"는 한 줄짜리 시('낙엽')를 썼다.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가을에는/기도하게 하소서…/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나 고은의 '가을편지'(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낙엽이 쌓이는 날/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에선 마음이 차분해진다. 한 주일새 주변 풍광이 사뭇 달라졌다. 나뭇가지가 앙상함을 더해갈수록 행인들의 옷차림은 두터워지고 있다. 누구나 한번쯤 시인이 되고픈 그런 만추(晩秋)의 계절이다. 부동산 투기 열풍은 '10ㆍ29 대책' 이후 일단 한 고비를 넘겼다.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강남 아파트 값은 어쨌든 낙엽 같다. 금융감독원이 주택담보대출 취급실태 점검 결과를 발표(18일)하면서 한 번 더 조인다. 꽁꽁 얼었던 소비심리도 고소득층부터 꿈틀댄다니 뭔가 좀 나아지려나 보다. 경제지표에선 한국은행의 '3분기(7∼9월) 경제성장률'(21일)이 눈길을 끈다. 지난 여름 리더십 부재, 파업사태 등 인재(人災)와 태풍 같은 천재(天災)가 어떻게 경제를 망쳤는지도 확인해 봐야겠다. 주초(17,18일) 한ㆍ미 연례안보협의회는 이라크 전투병 파병여부가 핫이슈다. 꼬리를 무는 테러 소식과 동맹국과의 약속 사이에서 정말 고민스럽다. 국회는 한ㆍ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집단소송제 입법과 출자규제 폐지, 예산 심의 등으로 분주함 속에 논란을 예고해놓고 있다. 그러나 경제계는 더없이 추워질 것 같다. 국내 1위 그룹 구조조정본부장과 2위 그룹 총수마저 출국금지됐다. 어디로 튈지, 누군들 무사할까 싶을 정도로 검찰 비자금 수사엔 브레이크가 없다. 이는 불륜캐기와 비슷하다. 남편(기업)들이 화류계 여자(정치권)와 바람피운 것(정치자금 수수)을 모두 들춰내고 있다. 부인(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남편의 개과천선일까, 가정파탄일까. '검사스럽다'는 비난을 듣던 검찰이 어느새 '불륜 감별사'로 화려하게 재등장했다. 검찰의 '불륜의 추억'은 모두 고백 후 사면받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