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쌀 흉작

극심한 가뭄으로 흉년이 잦았던 조선시대에는 적은 양으로 배를 채우는 구황요기(救荒療飢)의 방법이 적극 권장됐다. 명종때에 간행된 구황촬요(救荒撮要)를 보면 솔잎죽을 쑤고,느릅나무 껍질을 벗겨 즙과 떡을 만들고,곡식가루를 내는 방법 등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영양실조로 쓰러지는 탓에 빈사상태에 있는 사람을 소생시킨다거나 굶주려 종기가 난 사람을 치료하는 의술도 적혀 있다. 이 책은 바로 비상식량조리법과 구급법을 집대성해 놓은 셈이다. 지긋지긋했던 기근은 수리시설이 만들어 지면서 줄어들었고 이제와서는 오히려 쌀이 넘쳐나 재고처리를 고민할 정도가 됐다. 전국 각지에서는 쌀소비 캠페인이 벌어지고 다양한 가공식품이 개발되고 있다. '소비가 미덕'이라는 말은 곧 쌀소비를 두고 하는 표어가 됐다. 어느새 쌀은 흔하디 흔한 식량이 되어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하기에 이른 것이다. 쌀이 남아돈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 곡물자급률은 33%에 불과하다고 한다. OECD 30개 국가중 27위다. 여기에서 쌀을 제외한 나머지 곡물의 자급률은 5%정도 밖에 안된다. 그러나 이제는 쌀도 크게 안심할 처지는 아닌 것 같다. 올해 쌀 생산량은 3천91만석으로 23년만에 최대 흉작을 기록했다. 올해 쌀생산량만으로는 내년 쌀 예상소비량(3천3백70만석)에 훨씬 못미친다. 재고가 많아 아직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내년에도 올해처럼 흉년이 든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흉년의 주범으로는 잦은 비와 저온,일조량 부족,태풍 등 기상이변이 꼽히지만 해마다 재배면적이 감소하는 것도 큰 문제로 지적된다. 올해의 경우도 지난해보다 무려 3.5%가 감소한 3천7백㏊의 논이 사라졌다. 논은 식량안보차원에서 지켜져야 하지만 환경의 파수꾼 역할을 하는 공익적 가치는 더욱 엄청나다. 논은 물을 가둬주면서 홍수를 막고 흙이 쓸려나가는 것을 방지한다. 이곳에서 자라는 벼는 흙과 물과 공기를 정화한다. 인공습지의 기능을 논이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논리 만으로 수익성을 따져 논농사가 필요없다는 주장은 이제 거두어야 할 것 같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