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脫 샐러리맨 창업기] 배달피자전문점 피자디아 '정재창 사장'
입력
수정
경기도 안산시 본오동에서 배달피자전문점 '피자디아'를 운영하는 정재창씨(40).
그는 피자와는 거리가 먼 건축설계 전문가였다.
설계일로 바쁠 때 피자를 시켜 먹긴 했지만 피자가 '밥줄'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지금은 월매출 2천만원,순수익 4백만원의 어엿한 피자집 사장이지만 그의 원래 꿈은 건축설계였다.
"기술사가 되고 싶었어요.일이 잘 풀렸으면 지금쯤 건축업계에서 내 사업을 하고 있을 텐데.하지만 미련은 없습니다.지금은 피자배달이 천직이다 싶습니다."
그는 세상 일이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며 빙그레 웃었다.
그의 말대로 그는 설계사의 꿈을 안고 1989년 대우 계열사인 경남금속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1999년 한 설계회사로 자리를 옮겼고 작년 11월 사표를 써야 했다.
전문대 건축학과 출신인 정씨로서는 15년간의 설계 인연을 떠난 것이다.
그가 피자점 사장으로 '인생의 2막'을 준비한 것은 사표를 쓰기 1년전인 2001년이었다.
그 때도 '딱 이거다'라는 것은 없었다.
여러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그러던 그에게 피자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동생 친구가 떠올랐다.
"유명 배달피자 브랜드는 투자비가 비쌌고 수익률은 상대적으로 낮았습니다.동생 친구가 만든 피자디아는 맛과 가격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나름대로 생각했어요.투자비가 적게 드는 것도 매력이었죠."
하지만 새 출발에 모든 것을 걸어야 했던 그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창업을 나눠서 해야겠다는 것.
먼저 50% 지분으로 동업한 다음 사업성을 확인한 뒤 나머지 지분을 인수해 자기사업으로 만들었다.
불황기 창업전략이었던 셈이다.
그는 일단 동업자와 3천5백만원씩 마련했다.
점포는 그 해 4월에 문을 열었고 운영은 동업자가 전담했다.
건축설계일을 병행했던 정씨는 피자집 사업성을 검토했다.
피자점만 10여개에 달하는 주변 경쟁 환경이 불안했다.
그러나 이들 경쟁점이 본오동과 사동에 있는 24개 아파트단지를 대상으로 영업하면서 수익을 꾸준히 올린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점포가 많은 것은 장사가 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정씨는 11월에 또 한번의 승부수를 던졌다.
살던 아파트를 전세 주고 그 전세금으로 4천5백만원의 자금을 마련,가게를 완전히 인수했다.
살림은 조그만 셋방으로 옮겼다.
"마침 동업자분은 사업을 그만두려 했고 저는 속으로 찬스라고 생각했어요.계절도 피자가 잘나가는 겨울로 접어들고 있었지요.물론 모두 합쳐 8천만원이 들어갔고 여기서 실패하면 인생 끝이라 생각했어요.다른 날보다 매출이 떨어지는 날이면 속이 새까맣게 탔어요."
전력투구해야 했던 탓에 직장도 작년 11월께 그만 두었다.
회사도 구조조정중이어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지금 그는 하루에 피자 60판을 판매한다.
달마다 다르지만 한달 평균 1천8백만∼2천1백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월 순수입은 4백만원선.
피자디아 본사 사람들은 "적자나는 점포도 많은데 일정 수준의 수익을 올리는 게 놀랍다"는 반응이다.
실제로 정씨 가게는 매장면적,배달구역 대비 매출이 가장 높은 피자디자 점포로 인정받고 있다.
"개점 1년간은 투자하는 시기라고 보고 광고 같은 재투자에만 신경썼어요.신선한 재료를 얻기 위해 새벽마다 안산농수산물센터에서 식재료를 사오고 있어요.토핑 재료도 내가 먹는다고 생각하고 듬뿍듬뿍 올립니다."
정 사장은 "맛은 결국 주방에서 나온다"며 "나와 아내외에 다른 사람에게 주방을 맡기지 않는 것도 맛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내년에 제빵학원이나 요리학원에 등록해 피자에 대해 더 공부해볼 작정이다.
"2년 정도 더 노력하면 전세 준 아파트를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웃었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