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28일 개봉 '천년호' .. 한국판 '천녀유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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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훈 감독의 팬터지멜로 사극 "천년호"(千年湖)는 신상옥 감독의 "천년호"(千年狐.1969년작)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원작은 공포영화였지만 신작은 괴기적 요소를 줄이고 80년대 홍콩영화 "천녀유혼"식의 감각을 곁들여 재포장을 했다.
통일신라시대를 배경으로 펼치는 비극적인 연애담에다 칼싸움과 와이어액션을 곁들여 웅장한 스케일로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진성여왕(김혜리)과 장군 비하랑(정준호),그의 처 자운비(김효진)간에 얽힌 사랑과 이들간에 내린 천년호의 저주가 이야기의 중심이다.
자운비가 천년호의 저주로 인해 원귀로 환생할 즈음 비하랑은 한계상황에 봉착한다.
무사로서 원귀를 처단해야 하지만 남편으로서 아내를 살려야 하는 갈림길에 선 것이다.
이 영화의 주제는 바로 한계상황에서 개인이 느끼는 무력감이다.
기괴한 분위기와 원귀의 모습은 처녀 귀신을 내세웠던 '천녀유혼'을 떠올리게 한다.
여성이 자기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출하는 홍콩 영화였더라면 진성여왕과 자운비의 질투와 대결구도가 선명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한국적인 은근미를 보여준다.
진성여왕이 비하랑을 향한 연모를 속으로 삭이는 대목은 신상옥 감독의 원작과도 차별화된다.
여왕의 신하이자 여인의 지아비로서 비하랑이 두 여인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도 전통적인 한국 정서에 가깝다.
각 등장인물은 저마다 자신의 처지에서 최선을 다한다.
절대악은 천년호의 저주뿐이다.
그것도 천년 전 선사시대 장면으로 거슬러올라가 보면 억울한 원혼으로 밝혀진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은근한 정서와 상황논리에 충실한 나머지 등장인물의 개성이 부각되지 않는다는 한계를 노출한다.
극중 사람과 원귀의 대결은 '전설의 고향'에 자주 등장했던 익숙한 설정이기 때문에 새로운 인물과 이야기를 갈망하는 관객들의 욕구에도 부응하지 못한다.
감독은 스피드와 스케일로 이런 약점을 극복하려 한다.
거대한 왕궁과 사실적인 검술,힘이 넘치는 사운드 등은 화면의 지평을 확대시킨다.
28일 개봉,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